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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 삼성물산 등 상대로 손배소 제기
청구권 소멸시효 1년가량 앞두고 전격 소송
국민연금의 피해 규모, 최대 6000억대 추산
국민연금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에 나섰다. 합병 이후 9년 만에 최대 6750억원으로 추정되는 피해 회복을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김신·이영호·최치훈 전 삼성물산 사장과 법인 삼성물산 등 삼성 관계자 7명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이 피고로 적시됐다.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 시효(10년)가 불과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제기한 소송이다. 합병을 결정한 주주총회(2015년 7월)를 기준으로 보면 소멸 시효는 내년 7월까지다.
박민정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지난 20일 '엘리엇-메이슨 ISDS 구상권 행사' 관련 토론회에서 "소송 준비는 상당히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했다.
"이재용도 배상 주체"…9년 만에 칼 뽑은 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1대 0.35로 오너가의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에 유리하다는 논란으로 불이 붙었고, 당시 '캐스팅 보트'였던 국민연금의 찬성으로 합병안이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 중이었다. 연금의 찬성이 없었다면 합병도 불가능했다. 특별결의로 진행되는 합병안은 주총 참석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합병 결의안 찬성률이 69.53%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병 과정에서 연금이 찬성하도록 압박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엘리엇과 메이슨은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을 통한 국제중재를 잇달아 제기했다.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해 6월 엘리엇에 약 1300억원, 올해 4월에는 메이슨에 약 800억원을 각각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보다 삼성물산 지분이 많았던 국민연금은 피해 회복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합병 관련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지난 7월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국회 질의 과정에서 "올해 안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면서 소송이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소송 대상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아 이 회장 포함 여부가 관심사였다. 이번 소장을 통해 이 회장 역시 소송 대상임이 드러났다.
손해금액 산정이 관건…'최대 6750억'
소장에 적시된 소송가액은 5억100만원이다. 이는 형식적인 것이고 실제 피해금액이 구체적으로 산정되면 청구 규모는 수천억 원대로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여러 기관에서 집계한 피해 규모가 최소 1000억원 이상이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국민연금의 손해를 1138억~1658억원, 참여연대는 5200억~6750억원으로 각각 추산했다. 박근혜 국정 농단 특검에서는 1388억원으로 산정했다. PCA가 엘리엇과 메이슨에 대해 산정한 손해액을 1주당 손해금액으로 계산해 이를 국민연금에 적용하면 피해 규모가 약 2300억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물산으로서는 한동안 뜸했던 '합병 논란'이 손해배상소송으로 또다시 재점화되면서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최근엔 정부가 삼성물산을 상대로 엘리엇과 메이슨에 물어줘야 하는 배상금(합계 2100억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명목으로 세금을 지출하면 안 되기 때문에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합병·승계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 회장의 2심 공판은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