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된 정씨에‘후원 릴레이’
계좌공유 10만~100만원 송금
“현재까지 인증한 것 2억 넘어”
피해자에겐 “매국노” 2차 가해
의료계 내부서도“집단적 광기”
이른바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유포한 사직 전공의가 구속됐지만 정작 의료계 내부에서는 그를 ‘우리의 영웅’ ‘독립투사’로 치켜세우며 후원금을 보내는 ‘모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신에 따라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든 가해자를 칭송하는 의료계의 뒤틀린 인식과 행태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작성·유포 혐의로 지난 20일 구속된 사직 전공의 정모 씨에 대한 의사들의 후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의사만 가입할 수 있는 각종 의사 비공개 커뮤니티를 통해 정 씨의 개인 계좌번호를 공유하고 ‘후원 릴레이’를 이어가는 식이다. 커뮤니티에는 보통 10만 원부터 많게는 100만 원까지의 ‘후원 인증글’이 쏟아지고 있다. 100만 원을 송금한 한 의사는 “(정 씨의) 구속이 축제가 되게 만들어야 검찰이 ‘이게 아닌데’ 할 것”이라며 “(정 씨는) 우리의 영웅이다”라는 글(사진)을 올렸다.
최근 이틀간 모인 금액만 수천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A 커뮤니티엔 21일 밤에만 60개의 인증 게시글이 올라왔는데, 한 사람당 최소 10만 원으로 잡아도 수백만 원에 달한다. B 커뮤니티엔 “현재까지 송금하고 인증한 분만 2억 원이 넘었다”라는 글도 올라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수감생활 중 받은 영치금을 언급하며 “(정 씨의) 영치금 계좌가 나오면 모두 십시일반해 정경심 2억 기록을 깨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온라인 집단 괴롭힘(사이버불링)을 주도한 정 씨를 두둔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가해 여론도 심화하고 있다. C 커뮤니티에선 “일제강점기 때도 동료를 팔아 자신만 잘 먹고 잘산 매국노들이 있었다”면서 “너네 때문에 숭고한 독립투사 한 명이 구속됐다”고 쓴 글이 인기 게시글로 올랐다. 심지어는 피해자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정 씨에 대한 ‘처벌 불원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대학병원의 한 의사는 “범죄자를 위해선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정작 피해자들이 받았을 아픔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자성의 목소리는 전부 묵살하면서 의료계가 집단 광기에 휩싸여간다”고 한탄했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블랙리스트) 접속 링크를 공유한 3명을 추가로 특정해 추적 중”이라며 “악의적인 집단적 조리돌림 행위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661335?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