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19일 입수한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공단)의 ‘역사인문학아카데미 운영계획 수립’ 문서를 보면, 지난달 말 공단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집권 시기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이해하자는 취지의 ‘역사인문학아카데미’ 강의 개설안을 결재했다. 강의는 이달 말부터 내년 2월까지 총 여섯차례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공단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신청을 받고 장소 대관과 강사료 지급 여부 등 구체적인 내용을 서대문구청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서대문구 산하 기관으로 서대문형무소 등의 운영 실무를 담당한다.
문제는 강의 내용이다. 개설안을 보면, ‘건국’ 개념을 강조하고 독재 정부를 옹호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이룬다. ‘건국, 근대화, 선진화’를 주제로 한 강의에는 “이승만의 건설, 박정희의 도약, 전두환의 선진국으로 진입시킨 위대한 시대”라는 설명이 붙었다. ‘5·16, 6·3 사태, 10월 유신으로 근대화 완성’, ‘배고픈 국민에게 밥을 먹이고, 정신을 일깨워 국가 운영의 주역으로’라는 제목의 강의도 포함됐다.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로 참여해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꼽히는,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여섯차례 강의를 모두 진행한다고 소개됐다.
독립운동 단체들은 독립·민주화의 상징인 서대문형무소를 운영하는 서대문구가 왜곡된 역사관을 이어가고 있다고 반발했다. 지난해 10월 서대문구는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며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 부스를 서대문형무소 앞에 설치하는 일을 막아섰다. 광복회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진행해온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양사업’도 내년부터 서대문구 쪽 지원 예산 전액 삭감이 통보된 상태다. 특히 지난해 5월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선임한 한운영 공단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 참여 명단에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됐다. 유민 광복회 대외협력국장은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기념사업에 협조적이었던 서대문구청이 지난해부터 달라졌다”며 “이번 강의 논란까지 보면 서대문구가 독립운동 역사를 폄훼하려는 일련의 뉴라이트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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