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는 얼마 전, 하이브 소속 다른 그룹의 매니저가 면전에서 팀원에게 “(하니를) 무시해”라고 하는 걸 들었다고 한다. 새 대표는 “증거가 없고 너무 늦었다”고 덮었고, 결국 사과도 받지 못했다. 뉴진스 리더 민지는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나게 될지, 지켜주는 사람도 없다”고 괴로워했다.
□ 지난 11일 뉴진스 5명 멤버 전원이 하이브와 자신들이 속한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를 향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데는, 보호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있다는 좌절감이 원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멤버들은 유튜브 임시 계정 라이브를 통해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해임 사태에 대한 입장과 그동안 겪은 불합리한 사례들을 언급했다. 컴백 일주일 전에 확인되지도 않은 민 전 대표의 배임 의혹을 기사로 알린 점, 그동안의 작업물조차 삭제되고 있는 점, 의료기록 같은 사적 자료까지 유출되고 있는 점, 믿고 의지했던 동업자들이 배척되고 있는 점 등을 열거하며 불안을 호소했다.
□ 순수함과 편안함, 오묘한 매력으로 2년 전 데뷔와 함께 센세이션을 일으킨 뉴진스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천재성을 인정받는 민 전 대표가 하이브로 옮겨 탄생시켰다. 멤버 다니엘은 “민 대표님은 지금의 뉴진스를 만든 사람”, “작은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고 독특한 톤과 컬러를 만들었다”, “핵심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했다. 그의 해임에 민지가 “팀의 색을 잃게 될까 봐 속상하다”고 한 건 당연한 반응이다.
□ 뉴진스가 어른들 싸움에서 민 전 대표의 편에 서며 손해를 자초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선택 같다. 인격적 모독조차 구제받지 못하고, 활동 제약의 분위기가 감지된 상황에서 기로에 섰던 것이다. 25일까지 민 전 대표를 복귀시켜 달라는 이들의 요구를 하이브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계약 해지를 위한 소송전이 유력하다. 합의든 법적 결론이든, 아무 죄 없는 뉴진스에게서 무대를 박탈해 버릴 만큼 이 사회 시스템이 비정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진희 논설위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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