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배용준과 최지우 주연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로 한류 붐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2002)의 윤석호 감독이 멜로 영화로 극장가를 찾아온다.
오는 11일 개봉 예정인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트라비아타'(이하 '라트라비아타')는 드라마를 주로 제작해온 윤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국 영화다.
대중에게 윤석호라는 이름은 감독보다는 PD로 친숙하다. PD로서 '겨울연가'를 비롯해 '가을동화'(2000), '여름향기'(2003), '봄의 왈츠'(2006) 등 사계절 연작을 내놓은 그는 일본 영화 '마음에 부는 바람'(2020)을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라트라비아타'는 윤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한국 영화 데뷔작이다. 그가 2004년 설립한 윤스칼라가 제작한 저예산 영화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를 찍던 시절에도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했지만, 자본의 논리와 충돌하곤 했다"며 "다 내려놓고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던 중 일본 영화사 쪽에서 예술영화 연출을 제안받아 '마음에 부는 바람'을 찍었고, 이번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라트라비아타'를 구상한 계기에 관해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사람들의 소통이 끊기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선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종을 이루는 걸 보면서 '이런 시대에 편안하고 따뜻한 이야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젊은 선남선녀의 로맨스인 '겨울연가'와 달리 '라트라비아타'는 중년의 멜로다. 제목 그대로 인생의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접어들 나이인 40대 중반의 영희(김지영 분)와 준우(배수빈)의 이야기다.
성악가인 어머니를 여의고 유품을 정리하러 제주도에 내려온 준우는 마을 식당에서 일하는 영희를 우연히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일본 작가 이부키 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윤 감독은 "'다정함의 과학'이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고 따뜻한 마음이 가진 치유의 능력에 주목하던 차에 원작을 추천받아 읽고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라트라비아타'는 요즘 영화답지 않게 이야기의 전개가 느린 편이다. 그만큼 영희와 준우의 감정을 천천히 쓰다듬듯 섬세하게 그려낸다.
윤 감독은 "상업적인 성공을 우선 목적으로 삼았다면 그런 부분(이야기의 느린 전개)도 고민했을 텐데, 내 페이스(속도)대로 가고 싶었다"며 "때로는 아다지오(느림)의 미덕도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겨울연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라트라비아타'에서도 이어진다. 늦여름 제주도 바닷가의 한적한 마을 풍광이 스크린을 채워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낭만적인 클래식의 멜로디가 흐른다.
'라트라비아타'는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윤 감독은 "청춘 시절의 기억이 음악에 묻어 되살아나곤 하지 않는가. 음악이란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음악 영화의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윤 감독이 '겨울연가'에서 보여준 감수성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느낌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감수성을 유지하는 비결에 뭐냐는 물음에 그는 한마디로 "동심"이라고 답하고는 "(52세에) 결혼을 늦게 하고 자녀도 없이 살다 보니 (감수성이) 남보다 잘 보존된 게 아닐까"라며 웃었다.
그는 "요즘은 사랑도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인 거 같다. 집도 서로 멀면 안 되고 경제적 수준도 맞아야 하고…. 그런 식으로 연애도 비즈니스가 되면서 순수한 러브 스토리가 현실에서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감독은 앞으로도 '라트라비아타'처럼 저예산이더라도 자기만의 색깔이 선명한 영화를 연출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젊은 시절엔 에너지가 넘쳐 경쟁에서 이기려는 의욕도 강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남은 시간엔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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