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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을 얼리거나 세균을 주입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지켜보고 산 채로 해부하는 만행을 저지른 '731부대'의 이름은 한국에서도 웬만큼 익숙한 편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는 주요 탐구 대상 가운데 하나인 731부대에 관해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관련자들로부터 증언을 듣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중장과 동문이며 그와 직접 대면하기도 했던 원로 의학자를 비롯한 의대 교수, 의사들과 731부대의 최말단에서 손발의 역할을 한 소년대원, 중국인 피해자, 언론인, 연구원 등의 증언과 조사 결과 등을 담았다.
가해자라고 분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시노즈카 요시오는 실업학교 재학 당시인 1939년 소년대원으로 지원해 당시 만주국 하얼빈 외곽 핑팡의 731부대에 배치된 후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한다. 그는 세균을 대량 생산할 때 쓰는 균주를 운반하는 것과 같은 허드렛일을 맡았다.
그는 생체실험과 생체해부에도 참여했다. "처음 본 희생자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그는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점차 익숙해졌고 별다른 느낌을 갖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세균전 피해자들의 증언도 나온다. 대개 어린 나이였던 증인들은 중국 화중(華中) 지역에 투하된 페스트균 폭탄으로 가족들이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전염 우려로 희생자들의 시신은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버려졌고 남은 가족들은 강물 위에 띄운 작은 배 등에 격리돼야 했다
731부대의 사체 소각로
'15년 전쟁' 모임을 비롯해 731부대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애태우는 것은 전후 미국과 일본의 야합으로 진상이 은폐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미국과 일본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세상에 드러날 자료들이 남아 있다.
미국은 전쟁범죄로 고발해야 할 731부대 관계자를 '냉전' 협력자로 만들기 위해 그 죄를 '면책'했고 그들이 얻어낸 세균전 등에 관한 노하우를 끌어내기 위해 731부대의 모든 것을 은폐했다.
이러한 미국의 소극적 태도는 독일 전범재판에서 생체실험 등에 참여했던 의사 전범 20명이 기소돼 7명이 사형을 선고받는 등 무겁게 처벌된 것과 비교된다.
심지어 소련조차 전쟁 후 만주를 점령한 뒤 731부대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 전모를 거의 파악했고 100명이 넘는 관계자들 가운데 12명을 기소했다. 소련은 조사 내용을 미군 측에도 넘겼으나 미국은 반인도 범죄를 처벌하는 대신 731부대의 연구 성과를 넘겨받고 일본을 냉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용인하는 쪽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