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 1970년대 독도에서 물질하며 영유권 확인 ‘산증인’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독도의 유일한 식수원 '물골'로 가는 험난한 998개 계단을 매일 같이 오르내렸주."(오르내렸지)
'우리 땅' 독도에서 1950년대 말부터 10여년간 물질한 해녀 김공자씨는 10여년전인 2013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독도경비대가 있던 동도에 물이 모자라 우리가 지내던 서도에서 식수를 전해주기도 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중략)
제주해녀들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동해의 끝자락 독도에서 '바깥 물질'(출가 해녀)을 했다.
독도로 간 출가 해녀들은 수십년간 울릉도·독도 바다를 누비며 해산물을 채취, 독도 땅에 대한 우리나라의 실효적 지배 면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우리 땅 독도 수호에 앞장선 제주해녀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해녀의 전통을 잇고 있는 후대 제주해녀들이 다시 독도를 찾았다.
제주도는 경북 울릉도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간 독도 연안 어장에서 지역 어업권과 영유권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제주해녀의 발자취를 되짚는 물질 시연 행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과거 독도에서 출가 해녀의 역사적 가치와 헌신을 재조명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행사에는 1970년대 독도까지 가서 '바깥 물질'을 했던 장영미(69·귀덕2리 어촌계)·박영실(66·비양도 어촌계)씨 등 2명을 포함해 제주해녀 7명과 공무원 등 12명이 함께했다.
(후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6 https://m.yna.co.kr/view/AKR20240906082400056?site=popup_share_co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