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싱 하던 초보의사가 기도삽관? "공보의, 군의관 투입 '응급실 뺑뺑이' 못 막아"
한국일보 원문 기사전송 2024-09-05 04:31 최종수정 2024-09-05 09:01
지방의 한 공공의료원에서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일하는 A(27)씨는 정부가 공보의, 군의관을 응급실에 투입시킨다는 방침을 듣고 한숨부터 쉬었다. 공공의료원과 일선 응급실에서 요구하는 의료 기술이 엄연히 달라서다. 이미 전공의 파업 이후 공보의가 대학병원에 대거 투입된 상황에서 지역 의료 공백만 더욱 커질 거란 우려도 크다. A씨는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차질이 생긴 대학병원에 4일부터 군의관을, 9일부터는 공보의를 집중 배치할 방침이다. 전공의 공백이 6개월간 이어지면서 한계를 보이는 응급실 인력난을 공보의, 군의관들로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공보의들 사이에서도, 응급실 현장에서도 미봉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공보의들은 자신들이 응급실에 파견된다고 해서 진료 가능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른바 '뺑뺑이'가 해결되긴 어렵다고 입을 모른다. 응급실에 배치된 공보의가 환자를 나서서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A씨는 "공보의, 군의관에게 어떤 업무가 맡겨질진 모르겠으나 적극적인 진료 업무가 주어진다면 간호사, 전문의 선생님들로부터 '왜 이런 환자를 받았냐'며 눈총을 맞을 수도 있다"며 "어떤 공보의가 낯선 병원에서 책임을 무릅쓰고 환자를 받겠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공보의가 전문의 인력을 대신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높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의과 공보의 중 일반의와 인턴 비중은 71%인 반면 전문의는 29%에 불과하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회장은 "공보의 대부분이 의대를 갓 졸업하거나 인턴을 마친 이들로 전문의를 대체할 수 없다"며 "하물며 전문의 자격이 있는 이들도 응급의학과와 관련이 없는 타과가 많아 응급 환자에 대한 진단을 내리기 버겁다"고 잘라 말했다.
공보의들은 혹시 모를 의료 과실을 걱정하기도 한다. 공보의 B씨는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들이 소송에 걸리는 건 다반사였다"며 "공무원 신분에 문제가 생길까 스트레스가 더욱 클 것"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다른 공보의 C씨도 "지금은 드레싱(상처 치료)이나 피 뽑기 같은 일을 하는데, 응급실에선 전문의 3명이서 하는 기도삽관이나 정맥 잡기 등을 시키는 건 아닐지, 혹시 사고가 나진 않을지 무섭다"고 토로했다.
오히려 군의관과 공보의가 빠진 군부대와 의료취약지의 의료 공백만 커지는 역효과가 예상된다. 공보의는 의료 취약지 보건지소 등에서 3년간 예방 접종을 비롯해 진단, 진료 업무를 한다. A씨는 "대학 병원 투입 후 보건지소 1곳을 담당하던 공보의가 최대 5곳을 담당하는 사례도 있다"며 "마을 5곳을 맡으면 시골길을 수십 분 운전해서 이동하고 1,000명 넘는 환자가 늘어나는데 의료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장 다음 달부터 독감 접종이 있는데 환자들의 경과를 잘 지켜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 지역 의료 공백이 더욱 악화할 거란 주장도 나온다. 이성환 회장은 "안 그래도 공보의 대신 현역 입대를 택하는 이들이 2017년부터 5년간 4배가량 늘었다"며 "3년 복무하는 공보의가 현역병보다 더 오랜 시간 커리어가 끊겨 숫자 자체가 줄고 있는데 이런 상황까지 반복되면 지원율이 줄고 결과적으로 지역 의료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https://news.nate.com/view/20240905n0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