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플라스틱 빨대를 볼 수 없었다. 이 카페는 ‘환경 보호’를 위해 종이 빨대만 제공하는 매장이다. 손님들은 빨대를 아예 쓰지 않거나 종이 빨대를 썼다. 다 쓴 빨대는 ‘일반 쓰레기’라 적힌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컵에 그대로 꽂아둔 채 떠났다. 반면 이 카페 바로 맞은편에 있는 포장 전용 간이 카페에서는 플라스틱 빨대를 쌓아 놓고 쓰고 있었다.
환경부가 카페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하고 업체 자율에 맡기기로 한 지 열 달이 지났다. 많은 카페에서 가격이 더 저렴한 플라스틱 빨대를 쓰고 있지만, 일부 카페는 ‘친환경’을 앞세워 종이 빨대만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환경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는 환경부 용역 보고서가 올해 3월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종이 빨대는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산성화, 담수 생태 독성, 인간 독성, 부영양화 항목에서 플라스틱 빨대보다 환경에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 빨대도 결국 쓰레기로 배출되기 때문에 대체품을 찾기보다는 아예 빨대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환경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PP) 빨대와 종이 빨대를 각각 생산해 사용하고 폐기하는 순간까지 전과정평가(LCA·제품의 전 과정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배출되는 물질량을 정량화하는 환경 영향 평가 방법)한 결과 종이 빨대가 유해 물질 배출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위상 의원은 “전 정부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대체하도록 유도했던 것은 전형적인 ‘그린 워싱’ 정책”이라며 “플라스틱 빨대도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반적으로 빨대 자체의 사용을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선 지구온난화의 척도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다 쓴 빨대를 매립하건 소각하건 둘 다 종이 빨대가 더 배출량이 많았다. 미국의 일일 빨대 소비량이라고 알려진 5억개를 매립할 때를 기준으로, 종이 빨대는 258만㎏의 탄소를 배출해 플라스틱 빨대 탄소 배출량(56만6000㎏)의 4.6배에 달했다. 매립 대신 소각했을 때도 종이 빨대의 탄소 배출량이 플라스틱 빨대의 1.9배였다. 이 밖에 물이나 토양을 산성으로 바꾸는 산성화는 종이 빨대가 2배, 강·호수 등 담수(淡水) 생태에 미치는 독성은 7배, 인간에 미치는 독성은 4.4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영양화(강·바다·호수 등에서 영양 물질이 증가해 조류가 급속히 증식하는 현상) 물질은 종이 빨대를 매립했을 때가 플라스틱 빨대를 매립했을 때보다 4만4000배 이상 많이 배출됐다.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보다 환경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항목은 오존 고갈, 토양 독성, 자원 고갈 정도에 불과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2021년 환경부가 빨대 규제를 추진했을 때와는 정반대다. 당시 환경부는 2019년 실시한 연구 용역을 토대로 “플라스틱 빨대보다 종이 빨대의 (부정적인) 환경 영향이 평균 72.9% 낮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연구 용역에서는 사용한 빨대의 폐기 단계는 빼고 ‘원료의 취득 및 제품 생산 시’까지의 환경 영향만 비교했다. 이후 환경부는 1년간 계도 기간을 거친 뒤 “종이 빨대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낮았다”는 이유를 들며 빨대 규제를 무기한 유예했다.
종이 빨대가 생각만큼 친환경적이지 않은 이유는 100% 종이거나 생분해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종이 빨대를 포함한 종이 일회용품은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코팅을 하는데, 코팅된 부분이 매립, 소각되는 과정에서 환경과 인체에 안 좋은 물질이 배출된다. 종이 빨대가 물에 녹거나 땅에 묻혀도 미세 플라스틱이 배출돼 해양 생물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종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도 탄소와 유해 물질이 배출되고, 여기에 플라스틱 코팅을 하면서 이중으로 탄소가 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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