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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어느 천재 고고학자 이야기 (마야 문자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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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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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스터리인 마야문자는 뜻밖에도 1952년 소련 학자 유리 크노로조프가 해독해냈다. 그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출신인데 그 삶의 궤적은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극적이었다. 크노로조프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예술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10살이 되던 해에 300만명 가까이 기아로 사망한 유명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겪으며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입학한 직후에는 2차 대전이 발발하였고, 그가 살던 하리코프는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는 독일군의 징집을 피해서 몇 년을 숨어 살았고, 정작 독일이 패망한 이후에는 점령지 출신이라며 독일의 부역자로 의심받았다. 그 결과 전쟁 직후 스탈린 치하에서 대학원 입학마저 거부되었고 언제 수용소로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게 되었다. 그가 좁은 연구실에서 아무도 모르는 마야문자의 연구에 매달린 것은 어쩌면 시대의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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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노로조프는 원래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 입학이 불허되면서 그는 간신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민속학박물관에 취직을 했다. 그는 박물관의 골방에서 숙식을 하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마야문자 연구를 시작했다. 2차 대전 당시에 소련 병사가 독일에서 가져온 책 2권과 란다 신부(그나마 남아있던 마야문자에 관한 글)의 보고서가 자료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만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 크노로조프는 양손잡이였으며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마야문자를 보는 눈도 남달랐고, 수학적인 머리가 비상했다고 한다. 그는 기묘한 그림처럼 생긴 마야문자들의 위치와 특징을 머릿속에서 수학과 통계적으로 재조합해냈다. 2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마야문자는 뜻을 전하는 표의문자와 음을 전하는 표음문자가 섞여 있다고 보았다. 한국어로 비유하면 한자의 음을 빌려서 쓰는 이두나 향찰과 유사할 것이다. 당시 중남미에서는 미국과 서방의 학자들이 돌에 새겨진 다양한 마야문자를 새롭게 발굴한 상태였다. 하지만 크노로조프는 그 새로운 발견을 알 턱이 없었다. 오로지 란다 신부의 자료와 남아 있는 마야의 책 3권으로만 글자를 풀어냈으니 그의 연구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크노로조프는 1952년에 자신의 해독을 발표하면서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고, 3년 뒤 박사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에게 박사논문조차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소련 점령지 출신인데다 그의 연구는 당시 소련을 적대시하는 신대륙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연구는 마야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마야인들에겐 문자가 없었다고 선언한 엥겔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는 반동으로 몰려 수용소로 갈 것을 각오하고 박사논문 심사장에 나갔다. 다행히도 그의 연구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마 소련의 정부와 학계는 냉전 시절 신대륙을 연구한 그의 업적이 사회주의의 우수함을 선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 크노로조프의 해독에 대하여 미국 학계는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였다. 당시 마야 연구를 주도하던 에릭 톰슨(1898~1975)은 마야문자가 실제 문법을 지닌 글자가 아니라 그때그때 남긴 기호라고 생각했다. 톰슨은 평생 크노로조프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았고, 대신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또 다른 저명한 마야 전문가인 예일대 교수 마이클 코에게 편지를 보내어 서기 2000년에 이 편지를 공개하며 누가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코 교수는 2000년 새해에 그의 편지를 공개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남겼다. “에릭, 아쉽지만 당신이 틀렸소, 우리 모두 크노로조프의 해석을 따라서 마야를 연구하고 있다오.”


실제로 1970년대 이후에 모든 마야문자의 해석은 크노로조프의 방법에 기반한다. 그 결과 지금 마야 전문가들은 전체 마야글자의 80% 가까이 해석한다고 자부한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마야의 티칼 유적을 처음 본 크노로조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50년 전에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선물한 것이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마야의 티칼 유적을 처음 본 크노로조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50년 전에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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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살에 처음 본 마야


크노로조프에게 이러한 세계적인 명성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나라에서 그를 초청했지만 소련 시절 내내 그는 여전히 외국으로 나갈 수 없었다.  천재고고학자인 그가 망명해버릴까 극도로 경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1990년이 되어서야 그는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크노로조프를 국민적 영웅으로 모시는 과테말라의 대통령이 직접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그가 마야문자를 해독한 지 거의 40년이 다 되었고, 건강도 극도로 쇠약해진 일흔이 다 된 나이였다. 이때 그는 비틀대면서 기어이 티칼 피라미드를 올라가서 평생 책으로만 보았던 고대 마야인들의 흔적을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후 1995년에는 멕시코를 방문하여 팔렝케, 야슈칠란 등 주요한 유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는 연로했고 당시는 소련이 패망한 직후여서 노학자의 삶은 그렇게 편하지 못했다. 

 결국 1999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병에 시달리다 홀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멕시코대사관의 도움으로 장례도 간신히 치를 정도였다. 멕시코에서는 이후 3m에 달하는 유리 크노로조프의 동상을 세우고 국민적 영웅으로 모시고 있다.


수많은 핸디캡을 딛고 그가 마야문자 해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차별 없이 보고 인류의 보편성에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다. 크노로조프는 마야의 문자도 세상의 다른 글자와 마찬가지로 수백년 동안 발달해왔다는 단순한 진리에 착안했다. 미지의 땅과 그 속의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은 그들을 정복하여 전리품을 박물관에 채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편견을 배제하고 인간문화의 보편적인 이해와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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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크노로조프와 그의 반려묘 아스피드(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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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인들이 마야문명을 해독해준 공로로 만든 조각상 

유카탄에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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