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서울 강북구의 한 구립 도서관 고객의견함에 지난 3월 올라온 글입니다.
신간이 언제 들어오냐는 강북구 주민의 질문에 도서관 측은 '올해 도서구매 계약 과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 양해를 구하는데요.
이 계약이 지연된 이유가 해당 도서관들의 운영을 총괄하는 지방공기업 '강북구도시관리공단'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라는 제보가 KBS에 들어왔습니다.
도서관 업무를 담당하는 A 관장에 대해 공단의 B 이사장이 고의적으로 결재서류를 반려하는 등 업무에 훼방을 놓았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사연인지, 취재진이 양측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 A 관장, '직장 내 괴롭힘'에 정신병원 입원까지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소속 A 씨는 지난해 3월 강북구립 도서관 8곳을 총괄하는 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A 관장 측은 승진 이후 이사장의 괴롭힘이 업무 분야에서 교묘히 진행됐다고 주장합니다.
먼저 A 관장이 이사장실에서 대면보고를 할 때, 정작 보고할 내용은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돌아왔던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대면보고에서는 '도서관 사서들이 왜 파업을 하냐' '수습 끝난 직원이 노동조합에 바로 가입한 사실을 알고 있냐'는 식의 이사장의 발언이 2-3시간씩 이어지는 일이 반복됐다는 주장입니다.
또 올해 상반기의 절반이 지났는데, 총 8곳의 구립 도서관에 신청 도서를 제외한 신간 도서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도서관의 핵심 업무인 신간 구입과 관련해 '장서 개발 계획'을 올해 1월 보고했지만, 올해 4월 말까지도 이사장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서 개발 계획'은 지난해까지 10여 장 분량으로 제출해 매년 1월 통과되어 왔지만, 올해는 이사장이 추가로 요구한 각종 보고서까지 총 150여 장으로 불어났습니다.
A 관장과 함께 일했던 사서 B 씨는 이렇게 당시 상황을 증언했습니다.
사서 B 씨
"보고서를 계속 보강하라고 이사장이 지시하면서 5월까지 핵심 업무를 아무것도 진행을 못 한 거죠. 이사장의 지시가 업무에 어떠한 효율을 가져왔는지 아무도 이해를 못 하고 있고. 아무 의미도 없는 계속적인 괴롭힘의 형태로 반복 업무를 시킨 게 네 달이 넘었으니까요. 그 기간 동안 도서관 이용자들은 결국 피해를 입고 있는 거죠."
A 관장은 이후 취재진에게 당시 감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 관장
"공채로 입사해 올해로 도서관 일만 23년째입니다. 23년 동안 일해오며 정말도서관 운영이 안 될 정도로 '손발이 묶였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건 (이번 이사장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집에서 지켜봐 온 A 관장의 동생도 점점 걱정이 커져 갔습니다.
언니가 자주 집에서 밥도 잘 먹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단기 기억을 잃는 등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겁니다.
A 관장의 동생
"언니(A 관장)가 1월부터 잠을 못 잔다고 했어요. 새벽 한 두 시부터 밤을 꼴딱 샌다는 거예요. 그럼 잠 안 자고 뭐하냐고 물어보니까 '내일 회사 가면 이사장한테 뭐라고 얘기하지' '이거 결재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결재를 받지' 밤새 그 생각만 한대요. 빨리 결재를 받아야 서점에 책도 발주하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데…일을 못하게 하니까 언니도 미쳐버리겠는 거예요."
급기야 A 관장은 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지난달 9일부터 한 달여간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는 우울감에서 비롯된 불안장애와 수면장애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놨습니다.
A 관장의 동생은 "언니는 지금 이사장을 보는 것 자체를 너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장은 A 관장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도 20여 일이 지나서야 올해 '장서 개발 계획'을 결재했습니다.
■ 이사장은 '괴롭힘' 의혹 부인…고용노동부 조사 중
고용노동부/직장 내 괴롭힘 대응 매뉴얼(2023.4)
A 관장 측이 주장하는 '업무 결재서류의 고의적 반려' 등은 고용노동부 매뉴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직장갑질 119 이미소 노무사는 "결재 지연으로 인한 업무 마비가 반복되는 것은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비롯해 A 관장의 견해를 무시한 일방적인 사서 인사발령,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에 대한 경위서 작성 등 이사장의 갑질 행위가 지속됐다고 A 관장 측은 말합니다. 이같은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강북구도시관리공단의 B 이사장은 모두 부인했습니다.
B 이사장은 "우선 직원이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A 관장이 감사를 받아야 할 사항이 생겨 이를 통보하자, 병원에 입원을 한 후 직장 내 괴롭힘을 고용노동부에 신고 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또 '장서 개발 계획' 결재를 지연했다는 A 관장 측 주장에 대해선 "도서관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보고 장서 구매 외에도 문화 프로그램과 체험 공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업무상 절차였을 뿐"이라 반박했습니다.
이어 " 공단 및 구청 도서관 정책과 (장서 개발 계획이) 맞지 않아 이를 개선 검토하는 정상적인 업무였다"며 괴롭힘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A 관장 측은 "병원 입원 이전에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재차 반박했습니다.
A 관장 측은 지난달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진정을 제기했고, 북부지방고용노동청은 사안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B 이사장 측은 "해당 사건과 고용노동부 개선지도 문서를 공단에서 받았고 외부 노무법인을 통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성실하게 조사를 받고 결과에 따른 조치를 이행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 보건소 팀장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져…또 '강북구'?
지난 1일에는 강북구 보건소의 C 팀장이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을 암시하는 유서를 쓰고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고인이 유서에서 직장 상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면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노조가 공개한 C 팀장의 유서에는 "팀장으로서 우리 팀을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상사가) 사사건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등 상사의 괴롭힘을 토로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C 팀장에 대한 상사의 갑질이 있었다는 내부 비리 고발 제보를 확인하고 조사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A 관장이 소속된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역시 강북구청 산하 지방 공기업입니다.
해당 공단의 임원 인사규정 제13조(품위유지 의무)와 20조(문책) 등에 따르면, 강북구청은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 등 의혹이 있을 시 규정 위반 여부 판단을 위해 공단 이사장에 대한 감사나 조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 관장의 동생은 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후 이사장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는 글을 구청 홈페이지 등에 올렸지만 "구청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이사장은 되려 관련 내용을 구청 홈페이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A 관장 측에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강북구민들이 이용하는 구립 도서관에 여전히 신간은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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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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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v.daum.net/v/20240514193109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