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사진 합성해 텔레그램서 공유
‘피해학교’ 400여곳 지도 제작도
2016년 소라넷, 2018년 웹하드 카르텔,
2019년 ‘n번방’에 이어 딥페이크까지
딥페이크 확산은 국가 위기 상태
예방교육-강력처벌 이뤄져야불법합성물(딥페이크)가 발견된 학교가 붉은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딥페이크 지도(deepfakemap)' 캡쳐
'불법합성(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한 분노로 사회가 들끓는다. 디지털 성착취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소라넷, 2018년 웹하드 카르텔·다크웹, 2020년 'n번방'까지 근 10년간 디지털 성착취 사건이 수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지금을 '국가 위기 상태'로 보고 강력한 처벌과 법제도 개선, 성교육을 강조하며 사회전방위적 협력을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복된 디지털 성범죄, "여성을 교환 가능한 물건으로 봤기 때문"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범람하는 이유에 대해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성범죄를 범죄가 아닌 놀이 문화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서울시가 2021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가해 아동·청소년 10명 중 9명은 '범죄'라는 인식 없이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상담에 의뢰된 청소년들은 총 91명으로, 이 중 중학생(14~16세)이 63%에 이르렀다. 성범죄 가해 동기는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함 21% △재미나 장난 19% △호기심 19% △충동적으로 16% △남들도 하니까 따라해 보고 싶어서 10% △합의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4% 순(중복 답변)으로 나타났다.
여성신문이 받은 제보 등에 따르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한 명이 딥페이크 사진을 올리면 대화방의 다른 참가자들이 칭찬을 하거나 호응을 하는 식의 대화도 포착됐다.
손 교수는 "과거 소라넷은 불법촬영 사진·영상을 올리면 서로 칭찬해줬다"며 "주목 경제 안에서의 놀이 문화와 연결돼 있다"고 했다. 이어 "왜 남성들, 특히 청년 남성들이 이런 식으로 인정을 받고, 즐거움을 느끼는지, 또 이런 놀이 문화에서 왜 여성의 신체를 교환가능한 물건으로 여기는지 등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드러난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은 '페미니즘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의 맥락도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손 교수는 "일부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여성인권이 너무 신장됐다는 대화가 오갔다"며 "'능욕방'이라는 이름에서 딥페이크 사진들이 공유된다. 여성을 능욕해서 응징한다는 정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굉장히 이상한 방식의 욕망이다. 포르노를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짓밟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몇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여성인권 적당히 올라가야지", "인권을 달라 사람 취급 해달라" 등의 대화가 오갔다.
'n번방' 참가자 실형 선고 12.4%, "수사기관·사법기관이 방조"
수사·사법기관의 안일한 태도가 디지털 성범죄를 반복하게 만들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그동안 수사기관은 '텔레그램은 서버가 해외에 있어 피의자를 찾기 어렵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며 "이런 태도는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텔레그램을 사용하면 안 잡힌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실제 'n번방' 사건 당시 수사가 제대로 착수되지도 않다가 '추적단 불꽃' 활동가들의 폭로 이후 수사는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n번방' 참가자 중 혐의가 특정된 378명 중 실형이 선고된 건 12.4%에 불과하며, 집행유예 선고율은 69.1%에 그쳤다.
허 조사관은 "사법기관은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가해자들이 이를 보면서, 범죄지만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가 해도 된다고 용인해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가해자 처벌을 통해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이 중범죄라고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참여한 22만명을 모두 형사 처벌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불이익을 주고,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가해자가 학생이라면 학교폭력 사건처럼 생활기록부에 범죄 사실을 명시하거나, 대학 수시 지원에 불이익을 주는 식이다. 허 조사관은 "가해자들을 겁먹게 하고, 생활에 불편을 겪게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성교육, "성인식·성태도 배울 수 있어야"
김연웅 남다른성교육연구소의 사무국장은 "여성을 성적 대상, 상품으로 보지 않게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성교육이 성지식과 성건강에 대해 치우쳐 있어 청소년들이 건전한 성문화와 성태도를 배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타인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타인의 성적 권리를 침범하는 행위인지 등에 대한 교육도 없다. 또한, 성범죄 목격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청소년들도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안다"며 "성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배울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2020년 초·중·고교생 학부모 308명에게 학교 성교육에 대한 인식을 물어보자 응답자의 66.7%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365일 24시간 상담을 운영하며 피해촬영물 삭제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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