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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삼성 ②-방사선 사고를 대하는 삼성의 민낯] 피해자 이용규씨 "파트장, 기계 재가동에만 관심… 정말 비인간적"
예견된 사고였다. 30년 넘은 낡은 반도체 장비를 교체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묵살했다. 장비가 고장 나면 해당 업체 직원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고장 수리까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올해로 12년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서 일해온 이용규씨. 지난 5월 27일 방사선 피폭 사고를 당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방사선 노출사고가 발생한 것.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대응과 태도였다. 방사선 사고를 제대로 대처하는 전문가는 없었고, 사고를 숨기려는 데 급급했다. 오히려 사고 책임을 피해 직원에게 떠넘기는 허위보고서를 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씨는 스스로 병원을 찾아 다녔고, 병원비는 카드사에서 돈을 빌려서 내야 했다. 만삭인 아내와 아이를 둔 이씨 가족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는 지난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회사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씨의 이야기는 글로벌 일류기업 삼성의 민낯을 그대로 내 보인다. 2007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 사건 이후, 삼성은 직원 건강과 사업장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직원의 건강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회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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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안전교육 이수자였던 이씨는 사고 당일에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날(28일) 출근하고 점심 때 오른손이 붓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거 어제 작업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후 2시 30분께 상사에게 보고했더니, '기다리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사내병원으로 간 다음에,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했어요."
아주대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28일 오후 5시 40분께. 이씨는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던 의사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씨는 "(의사가) '왜, 여기로 왔냐'면서 '방사선 피폭은 (아주대병원에서) 볼 수 없다'는 거예요"라며 "회사말만 믿고 왔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원자력병원으로 가야 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회사는 바로 피해 직원을 원자력 병원으로 이송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씨에게 "개인적으로 차량을 빌려서 서울로 가거나, 일단 귀가해서 다음날(29일) 병원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회사 구급차로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구급차가 1대 밖에 없어,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환자를 이송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씨는 회사 태도에 분통이 터져 항의를 하자, 뒤늦게 회사 구급차로 원자력 병원으로 움직였다.
"회사를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직접 원자력병원에 전화를 했어요. (방사선) 피폭 사실을 말하니까, '진짜 피폭된 것이 맞나', '왜 피해 직원이 전화를 하느냐, 방사선 안전 담당자가 없느냐'고 하더라구요. 회사는 방사선 피폭 사실을 정부기관(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피폭 피해자를 원자력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이야기를…"
피폭 3일 만에 피해자에게 '장비 재활용' 묻는 회사… "정말 비인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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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로 방사능 누출과 피폭 사고를 당했지만, 내부에선 작업자가 잘못한 것처럼 이상한 말들이 떠돌았다고 했다.
"원자력 병원에 입원도 아니고 통원 치료를 받는 중에 회사로 나와서 소명을 하라는 거예요. 제가 '인터락(방사선 누출시 장비 작동이 멈추는 장치)을 해제해서 사고가 났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돌고… 그래서, 피폭 치료 받는 와중에 기흥사업장에서 회의를 했어요."
- 피폭 당한 직원을 상대로 소명을 듣는 회의요? 언제였나요?
"5월 27일 사고가 났고, 28일 신고하고, 저녁에 원자력병원 갔다가 29일 통원치료 받기 시작한 날이에요. 29일 저녁 8시, 기흥사업장 미팅룸이었는데…"
- 어떤 분들이 참석했나요?
"처음 보는 분들이 있었고, 환경안전담당부터 여러분들이 계셨고요. 평택쪽에서 팀장대행이라고 책임자라고 오신 분이 저에게 갑자기 '사고 장비를 어떻게 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재발 방지대책이 뭐냐'고 물어보더군요."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기준치 188배 넘는 방사선 피폭을 당한 피해자를 앞에 두고, 이제 갓 병원치료를 시작한 그에게 회사는 장비 재활용 대책을 물은 것이다.
"저도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지금 내 손가락 몇 개가 날아가게 생겼지만…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장비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했죠. 그 장비가 무서워서 누가 사용하겠느냐,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의 말이 계속됐다.
"제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하고 나왔냐면, 저도 회사에서 직급도 있으니까, '당신의 자식들이 (이 장비를) 만지거나, 당신들이 직접 만지실 거냐, 이런 사고를 보고도 본인들이 장비를 만질 거냐'고 했더니, 아무도 말을 하지 않더군요.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지만, 당신들은 진짜 비인간적인 사람'이라고 했어요."
"2016년부터 장비교체 요구... 회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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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노후화에 따른 고장수리 등이 빈번했다. 장비 제조업체 직원들도 이씨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이씨는 "2016년부터 장비교체를 회사에 이야기했었다"면서 "하지만 회사는 어떻게든 '살려서 쓰라'는 압박을 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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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쪽은 "피해직원이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이송했으며, 치료비 지원 등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은 피해자의 주장"이라며 "회사는 피해 직원의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27만 삼성 가족이라는 말이 있다. 삼성은 과연 가족들에게 '우리 사업장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도 기흥사업장의 반도체 라인에 삼성 가족들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