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안방극장에 정체가 묘연한 남편들이 한둘이 아니다. '멱살 한번 잡힙시다'의 장승조, '원더풀 월드'의 김강우, '나의 해피엔드'의 손호준가 그랬고, '하이드'의 이무생은 정말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지면서 드라마가 흥미롭긴 했다. 하지만 마음이 조마조마한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의뭉스러운 남편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라도 최근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 시작한 이 사람은 다르다. JTBC '가족X멜로'(극본 김영윤, 연출 김다예)의 지진희다.
'가족X멜로'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톤 앤 매너부터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과는 사뭇 달라서 안심이 된다. 밝고 경쾌한 코믹 터치가 남자주인공 변무진(지진희)이 시청자들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게다가 신사적인 매너와 지고지순한 순정의 캐릭터로 팬심을 사로잡아온 지진희가 주는 신뢰감이 크다. 한마디로 시청자들에게 지진희의 호쾌한 변신이 기분 좋은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가족X멜로'는 벌리는 일마다 망해서 가족들을 고생만 시키다가 결국 이혼 후 떠나버렸던 변무진이 11년만에 갑자기 건물주가 되어 나타나 가족들은 물론 동네사람들까지 다 놀라게 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무진의 딸 변미래(손나은)는 똑부러지는 K-장녀로 아빠가 떠난 후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하며 잘 살아왔는데, 원망스러운 아빠가 갑작스레 나타나 엄마 금애연(김지수)과 동생 변현재(윤산하)의 마음을 흔드니 심기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굵직한 축은 애연을 두고 경쟁하는 무진과 미래의 대립구도다. 무능했던 아빠가 졸부가 되어 나타나 딸과 옥신각신하는 가족드라마라는 전제부터 시청자들을 무장해제한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역시나 지진희다. 그동안 작품들에서 하도 정장 차림을 많이 해서 슈트가 디폴트인 줄 알았던 지진희가 팔뚝에 온통 무신을 하고 캐릭터 변신을 한 것만으로도 신선한데, 손나은과 팽팽하게 맞서는 코믹 연기까지 자연스럽게 펼쳐주니 한없이 즐거운 것이다.
대중적으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러브레터'(2003)와 '대장금'(2003~2004)부터, '동이'(2010), '60일, 지정생존자'(2019) 등에 이르기까지 안방팬들에게 지진희는 늘 품위 있는 남자였다. 의대생, 종사관, 임금, 대통령 등의 캐릭터를 거치면서 품격이 다른 존재감으로 각인됐다. 직업 등 외형적인 모습뿐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 역시 격조 높은 모습이어서 더 그랬다.
단지 캐릭터만 좋았던 건 아니다. 지진희는 '따뜻한 말 한마디'(2013), '애인 있어요'(2015), '미스티'(2018) 등에서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섬세한 표현으로 연기 내공과 실력을 입증한 바 있다. 그의 필살기라면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그런 지진희가 이번 드라마에서는 옷차림에는 힘을 빼고 근육에 한껏 힘을 실었다. 직업은 딱히 없는데, 남자다운 매력은 더욱 배가했다. 미래와의 경쟁 때문만이 아니라 애연을 향한 여전한 사랑으로 선물 공세를 하며 열렬히 구애 중인 무진은 애연에게 "아직 예쁘네, 나 안 보고 싶었냐"고 하는 등 남자답게 툭 던지는 말과 행동들로 여심을 녹이고 있다.
X-와이프와 재결합하기 위해 뭐든 다 하겠다는 식의 저돌적인 무진을 보다 보면 지진희가 '결혼 못하는 남자'(2009)에서 찌질한 '초식남' 캐릭터로 시선을 모았던 것과 대비가 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15년만에 정반대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가족X멜로' 속에서 매력이 넘치는 지진희를 바라보며 '지진희를 너무 몰랐네' 하며 웃음 짓게 된다.
그러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무진이 아직 숨기고 있는 비밀이 너무 많아서다. 무슨 수로 건물주가 될 만큼 큰돈을 벌었는지, 기존 건물주를 숨지게 한 화재의 방화범이 정말 무진인지, 조폭 같은 팔뚝 문신은 왜 했는지, 301호 안정인(양조아)과는 과거에 어떤 관계였는지 등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은밀하게 숨기는 게 많다는 점에서 구린 게 있긴 있나 보다 하게 되며 시청자들의 마음이 영 찜찜한 중이다.
지진희의 호쾌한 매력에 손뼉을 치다가도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다. 지금껏 수상했던 남편 캐릭터들의 진면모에 뒷머리를 얻어맞은 시청자들이 또 다시 절망하는 일이 없기를, 부디 지진희가 그런 실망감을 주지 않기를 기대하면서도, 지진희도 '미스티' 등에서 결국 진범으로 드러나는 등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는 결말을 보이기도 했으니 방심하지 말자 하며 마음을 부여잡게 된다.
변무진의 본모습이 드러났을 때 부디 시청자들이 수긍하고 흡족할 수 있길 기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코믹한 가족드라마라는 장르에 믿음과 기대감을 걸게 되고, 지진희가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유쾌한 상남자가 될 수 있길 기대를 높이게 된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지진희의 정체에 드라마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 같다.
조성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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