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1위 기업 넷플릭스가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의 주요 주주인 방송사들에 기존보다 더 나은 콘텐츠 공급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돈을 더 줄 테니 티빙과 웨이브에만 제공하고 있는 드라마, 예능 등을 넷플릭스에도 풀어 달라는 취지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논의가 무르익는 가운데 마지막 걸림돌로 떠오른 방송사를 흔들어 양사의 합병 작업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최근 웨이브 주주인 KBS·MBC·SBS 지상파 3사 및 티빙 주주 SLL중앙과 물밑 접촉해 기존보다 유리한 콘텐츠 공급 조건을 내건 것으로 확인됐다. 토종 OTT에 독점 공급하는 콘텐츠를 넷플릭스에도 제공할 시 기존보다 높은 단가를 쳐주겠다는 식의 제안이다. 현재 이들 방송사와 티빙·웨이브 사이엔 넷플릭스 등 다른 OTT에 공급할 수 있는 콘텐츠 건수를 제한하는 계약이 이뤄져 있다.
넷플릭스의 제안은 지난해 12월 시작돼 9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티빙·웨이브 합병 논의에 또 다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재 주요 주주들은 합병 비율 등 굵직한 쟁점에 합의를 도출한 상황이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비율은 1.6대 1 정도, 기업 가치는 2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LL중앙 등 각 진영의 일부 방송사가 콘텐츠 공급 조건을 두고 막판 신경전을 펼치면서 본계약 체결이 지연되고 있다. 방송사들은 합병 OTT 외에 넷플릭스 등 다른 OTT에 공급할 수 있는 콘텐츠 수를 늘려 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제안은 방송사의 협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 이를 지렛대 삼아 티빙과 웨이브 양쪽 대주주에게 더 높은 콘텐츠 공급대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병 논의 과정에서 방송사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합병 OTT의 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와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합병 협상이 길어지는 것 자체도 넷플릭스에 불리할 건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시장 장악력이 약해진 넷플릭스가 잠재 위협 요소인 두 OTT의 합병을 견제하기 위한 ‘신의 한 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넷플릭스의 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지난해 1월 1400만명을 넘어선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티빙과 웨이브의 지난달 합산 MAU는 지난 5월 넷플릭스를 역전한 이후 격차를 벌리고 있다.
다만 넷플릭스의 견제가 합병 자체를 무산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생력이 점차 떨어지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주주로 있는 합병 OTT를 구심점으로 삼아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수익화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OTT가 순조롭게 출범해 규모가 커지면 향후 넷플릭스에 대한 방송사들의 협상력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며 “넷플릭스는 이 같은 점을 우려해 합병을 방해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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