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왼쪽)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오른쪽). 1951년 중공군 개입 이후, 맥아더 장군은 만주로 전장을 확대할 것을 요구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만주에 원자폭탄 투하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중인 1951년 트루먼은 유엔군총사령관인 맥아더를 해임했다.
트루먼은 한국전쟁에선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에 대해 트루먼은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 그 결정으로 트루먼의 정치적 커리어는 끝났다.
당시 한국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 한국전에서 사용하지 않았기에 베트남전에서도 그 기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전쟁사에서 한국전이 베트남전보다 더 중요한 게 이 때문이다. 트루먼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소련이 공격할 경우 미국의 대규모 핵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량 보복전략’ 개념을 미국 안보 독트린의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