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윤 정부 친일정책 지휘부의 정체... '고수'가 똬리 틀고 있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3,189 12
2024.08.19 12:21
3,189 12
뉴라이트의 득세는 오랜 사상투쟁의 결과

최근 한국에서 독립운동 단체들이 뉴라이트로 지목한 인사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과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임명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케인스의 예언을 떠올렸다. 8월 13일 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역사·역사교육 관련 기관 임원 중 최소 25개 자리를 뉴라이트 혹은 극우 성향 인사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실로 '역사전쟁'을 방불케 하는 전개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과 광복회 및 독립운동 단체, 역사 관련 학회들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친일적 행태를 중단할 것을 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윤석열 정부가 돌발적으로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행태의 배경에 뉴라이트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이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불장난이 아니라 한 사상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기초해 추진하는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지금까지 출몰한 뉴라이트 계열 단체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뉴라이트재단, 자유주의재단, 뉴라이트싱크넷, 한국현대사학회 등 다양하고 관련 인사들도 여럿이지만, 사상 면에서 핵심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필두로 한 '반일종족주의그룹'이다(<반일종족주의>는 이영훈, 김낙년, 주익종 등 6인이 2019년에 간행한 책으로, 국내에서 10만 권 이상, 일본어 번역서가 일본에서 40만 권 이상 팔렸다고 한다. 이듬해에 그들은 후속 작업으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을 펴냈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교과서포럼을 만들어 역사 교과서 개정 운동을 벌였고, 안병직, 이대근 등 그들의 스승 격인 인사들은 뉴라이트재단을 결성해 극우 성향의 정치 운동을 펼치면서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반일종족주의그룹의 중심은 이영훈, 김낙년, 주익종 3인이다. 이들은 모두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제자로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오랫동안 함께 뉴라이트 사상을 연마했고, 특히 이영훈은 2016년 이승만학당을 설립하여 뉴라이트 사상 대중화와 이승만 띄우기에 몰두해 왔다. 주익종은 이승만학당 이사로서 이영훈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승만학당은 설립 후 올해까지 매년 두 차례씩 3개월간 계속되는 오프라인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금까지 21기 교육을 마침으로써 최소 600명에게 면대면 뉴라이트 교육을 실시했다. 또 유튜브 채널 이승만 TV를 개설해 온라인 교육에도 열을 올렸는데 현재 구독자 수는 10만 5000명으로 적지 않은 숫자이고, 업로드한 동영상 수도 약 800개에 달한다.

케인스가 말한 '사상의 점진적 침투'를 위해 이보다 더 나은 전략이 있을까. 뉴라이트가 역사 관련 단체를 장악한 것은 물론이고 정권의 정책까지 좌지우지하게 된 것은 이처럼 끈질긴 사상투쟁의 결과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과거 행적과 언행을 두고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실 그는 뉴라이트 본류에 속한 인물이 아니며 그가 하는 말 또한 독창적인 언사라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그가 작년 12월에 했다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진정한 광복"이라는 말은 이영훈의 오래된 건국절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해 제3자 변제를 추진한 것이라든지, 강제동원이 명기되지 않음에도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허용한 것 등도 반일종족주의그룹의 주장을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윤 정부는 식민지기의 강제동원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제3자에게 변제책임을 지우면서 1965년 한국 정부가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반일종족주의> 10장에서 주익종이 주장한 내용 그대로다. 사도광산 문제를 처리하면서 강제동원 명기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반일종족주의> 5~7장과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7, 8장의 주장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김형석보다 김낙년이 더 문제일 수도


7월 30일 윤석열 정부는 반일종족주의그룹의 핵심 인물인 김낙년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에 임명했다. 임명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게 주의가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김낙년의 임명인지도 모른다. 김낙년은 <반일종족주의>와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양쪽 모두에 공저자로 참여했는데, 그의 역할은 일제강점기에 쌀 수탈은 없었고 조선 농민은 일제의 농업정책 덕분에 소득이 크게 증가했음을 논증하는 것이었다.

김낙년은 '수탈이란 대가 없이 강제로 빼앗는 것'이라고 정의한 다음, 1920~34년 산미증식계획 시기에 조선 농민은 대가를 받고 쌀을 팔았기 때문에 '수탈'당한 것이 아니라 '수출'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대규모 수출시장이 열렸으므로 조선 농민은 쌀 수출을 통해 소득을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김낙년의 견해는 눈을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일제 말기의 공출제도와 산미증식계획 시기의 권력적 강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각한 한계가 있다. 특히 수탈·강제동원의 개념을 협의로 정의한 다음 그에 꼭 들어맞는 사례가 없으므로 수탈·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의 오래된 논법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보통 심각하지 않다.

게다가 김낙년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농민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원인을 조선 전통사회에서 찾는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주 중심적 농정과 지주의 소작료 수탈 등 분명한 사회적 원인이 존재함에도 그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일제강점기의 소득증가와 생활수준 향상 등 긍정적인 현상은 모두 일제의 정책에서 비롯됐고, 가난과 같은 부정적인 현상은 조선 전통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식민사관 그 자체가 아닌가. 학자로서 이런 견해를 갖는 것은 그의 자유일지 모르지만, 이런 사관을 가진 사람을 "한국학의 진흥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목표"로 삼는 기관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3년간 김낙년이 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어떤 기괴한 한국학이 만들어질지 심히 걱정스럽다.

뉴라이트 인사 임명 논란이 한창인 와중에 서울 지하철 역사에 설치되어 있던 독도 조형물이 철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을 위한 선제적 대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시민들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논란이 일자, 서울교통공사는 하루 만에 사과하고, 새로운 독도 조형물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일 이 조치가 최근 윤석열 정부의 행태와 무관치 않다면, 여기서도 반일종족주의그룹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반일종족주의그룹은 앞서 언급한 두 책에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없다며, '독도는 우리 땅'을 노래하는 국민 정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바 있으니 말이다. 또 윤 정부가 이승만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는 배경에도 이승만 띄우기에 몰두해온 반일종족주의그룹과 이승만학당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위안부 문제도 그들의 주장대로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반일종족주의그룹이 주장한 내용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본격 거론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반일종족주의그룹이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군 위안부제는 공창제의 일환으로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운영이 민간의 책임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본군의 책임으로 돌릴 수가 없다.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 위안부 모집은 민간 주선업자와 보호자 간의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 위안부는 끌려가서 속박당하고 착취당한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를 누리며 인생을 개척했고 돈도 꽤 잘 벌어서 고향에 송금하고 저축도 했다. 위안소는 위안부들에게 수요가 확보된 고수익 시장이었다.'

나는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한겨레출판)이라는 책에서 반일종족주의그룹이 이용한 사료와 구사한 방법을 일일이 검토해서 위의 주장이 몽땅 거짓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반일종족주의그룹 가운데 위안부 관련 서술을 주로 담당한 이영훈은,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일부러 부각하거나 과장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사료적 가치가 없다고 부정하는 부조적(浮彫的) 수법을 자주 사용한다. 이영훈의 주장은 기존 연구를 모조리 뒤집는 전복적 견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지만, 내용은 하나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진 폭발성을 느꼈는지 아직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극우 민간단체에서는 이미 곳곳에서 소녀상을 모독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으니, 조만간 이 문제도 역사전쟁의 일환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부의 역사 관련 정책과 대일본정책의 지휘부는 반일종족주의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은 오랜 세월 함께 뉴라이트 사상을 연마해 왔고, 사료와 통계를 다루는 능력과 사상을 대중에게 설파하는 선전·선동 역량이 뛰어나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역사전쟁은 만만히 보고 대처해서는 안 된다. 그 중심에 '고수'가 똬리를 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애국적 역사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43324?sid=102

목록 스크랩 (0)
댓글 12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뉴트로지나 X 더쿠] 건조로 인한 가려움엔 <인텐스 리페어 시카 에멀젼> 체험 이벤트 354 09.10 30,666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2,524,48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6,203,890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4,017,871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5,316,94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1 21.08.23 4,641,35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0 20.09.29 3,617,09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37 20.05.17 4,171,45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76 20.04.30 4,700,100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18번 특정 모 커뮤니티 출처 자극적인 주작(어그로)글 무통보 삭제] 1236 18.08.31 9,337,416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98609 기사/뉴스 ‘빅토리’ 혜리 진심에 돌 던진 사재기 의혹‥“좋은 의미 작품, 대관 요청 多”[종합] 11:35 0
2498608 유머 행복한 모자 사진 11:34 154
2498607 이슈 결국 GL 때문에 부용이 캐릭터 뺀거 맞는듯한 "정년이" 4 11:34 503
2498606 이슈 훔쳐보는 자 변요한과 훔쳐 사는 자 신혜선의 몰입감 MAX 추적 스릴러✨ 지금 바로! 오직 웨이브에서! 11:33 57
2498605 이슈 한국인이 일본으로 여행 많이 가는 이유 10 11:32 640
2498604 기사/뉴스 할아버지 생각난 덱스, 조지아父에 '마사지 플러팅 ('가브리엘') 5 11:31 285
2498603 이슈 [MLB] 오타니 시즌 47호 15 11:30 218
2498602 이슈 시랑후에 오는것들 이세영 제작발표회 이미지 3 11:28 864
2498601 이슈 과일박쥐 줍줍 15 11:26 518
2498600 이슈 '민희진라이팅' 의심스런 뉴진스, '25일' 최후통첩은 왜 [이슈&톡] 81 11:26 1,855
2498599 기사/뉴스 ‘제2의 피프티 피프티’로 가는 뉴진스… 하이브-민희진 갈등 최고조로 158 11:24 3,561
2498598 이슈 김연아 디올 주얼리 화보 23 11:23 1,749
2498597 이슈 영화 빅토리 누적관객수.jpg 2 11:23 697
2498596 이슈 아프리카로 건너가 추장이 된 한국인.jpg 17 11:21 1,936
2498595 유머 헤어지자고? 너 누군데? 👤뉴스엔입니다 👤디스패치입니다 8 11:18 2,245
2498594 이슈 만화 녹색전차 해모수가 망하고 난뒤 제작회사의 후일담 12 11:18 1,075
2498593 기사/뉴스 의료공백에 건보 재정 투입 7개월째…"2조원 육박" 10 11:17 400
2498592 유머 손녀들에게 눈높이 교육 시켜주는 할부지 5 11:16 1,178
2498591 이슈 240911 빌보드에 올라온 뉴진스 관련 상세 기사 13 11:16 1,816
2498590 기사/뉴스 뉴진스 왕따, 사실이었나? 챌린지 배제→매니저 무시…논란 일파만파[스경X이슈] 48 11:16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