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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취재파일] "일제강점기는 북한 말"…日 극우, 10년 전 '뉴라이트' 주장 꺼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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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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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의 시대이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말살까지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무단적이었으며 악랄한 것이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제 강점기'의 이런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일제 시대'라는 말이 익숙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둘 가운데 '일제 강점기'를 사용하도록 배운 세대입니다. 일제 시대라는 표현만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 식민 통치를 나타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산케이 신문은 지난 12일 '일제강점기는 사실 북한에서 쓰는 용어'라는 주장이 담긴 극우 논객 구로다 가쓰히로의 주장을 실었습니다. 일본 언론인으로 40년 가까운 시간 한국에 머물며 '일본 최장수 한국 특파원'이라 불리는 구로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한국에서 '일제시대'라는 말에 '강제로 점령당했다'라는 의미의 '강점'이 붙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권(2003년~2008년)부터다. … 이후 강제동원, 강제징용 등 뭐든지 '강제'의 말을 붙이게 됐다. … 그런데 '일제 강점기' 용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북한에서 가져온 것이다." (출처 : 산케이신문)



일본 극우의 주장이니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구로다 이런 주장 이면에는 국내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로다의 주장은 10년 전부터 뉴라이트(New Right) 계열 역사학자들이 쏟아낸 주장과 판박이였습니다.
 

10년 전부터 시작된 '일제 강점기' 논란



2015년 10월, 정경희 당시 영산대학교 교수*는 <한국사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에는 아래와 같은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로 분류되는 정 교수는 이후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2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앞으로는 '정 전 의원'으로 호칭을 통일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용어가 북한의 한국 근현대사 인식을 대변해주는 '북한의 조어'라는 사실이다. 북한의 공식 역사서나 다름없는 <조선통사(하)>의 이 시기에 대한 명칭은 '일제 강점기'이다. … 북한은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일제시기를 '일제 강점기'라 부르고, 그 이후를 '미제 강점기'라 부른다." (출처 : '한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실제로, 1958년 편찬된 북한의 역사서 <조선통사(하)>를 보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를 '일제의 조선강점'이라 부르고 있고, 2차 대전 후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강점'으로 인해 남한은 여전히 식민지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즉, '일제 강점'과 '미제 강점'은 서로 쌍을 이루는 용어로, 남한이 여전히 식민지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뜻합니다.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논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인데, '왜 우리가 북한의 이런 선전 용어를 베껴 쓰고 있냐'는 게 정 전 의원 주장의 핵심입니다.

이런 주장은 비단 정 전 의원에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조전혁 전 국회의원 역시 지난 2014년 "'일제 강점기'라는 용어는 '미제 강점기'라는 북한의 역사 프로파간다(선전)와 정확히 일치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10년 전 뉴라이트가 쏘아 올린 역사 논쟁이 일본 극우 논객을 만나 지금까지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북한 말?…사실은



일제 강점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점령기'의 줄임말로,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수록돼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북한식 조어라는 주장에 대해 국립국어원 측은 "북한에서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을 조합한 것이기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학계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한국 현대사 1호 박사'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 교수는 '일제 강점'은 북한의 <조선통사>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독립운동은 물론, 광복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져온 역사의식인 만큼 북한의 학술 용어를 가져다 쓴 걸로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1923)>의 첫 머리는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입니다. 이런 인식은 독립 운동가라면 모두가 공유했던 생각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빼앗았다.'는 인식은 해방 이전이나 이후에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0일, 동아일보의 1면 기사 '대일배상요구자료내역'에는 "日帝(일제)가 우리의 주권을 유린하고 强占卅六年間(강점삽육연간)에 자행한 그들의 죄악"이라는 언급이 나옵니다.

또, 1950년 3월 1일, 당시 조선일보 1면 '3.1 정신으로 조국통일'이란 제목의 기사에는 "日帝(일제)의 强占(강점) 아래서 신음하던 삼천만한민족"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둘 모두 북한의 역사서 <조선통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전의 기록들로, 광복 직후에도 일제의 식민 통치 시기를 나타내기 위해 '일제 강점'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일제 강점'은 독립 투쟁과 광복을 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역사의식이자 이를 반영한 언어 습관입니다. 비록 지금은 분단국가가 됐지만, 일제 식민통치를 함께 겪은 남북이 유일하게 공유하고 있는 역사관이기도 합니다. 이는 북한의 역사서에 나온 말이 우리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해서 '일제강점기=북한 말'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10년 만에 다시 소환된 뉴라이트…그 이유는?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뉴라이트의 역사에 대한 보도*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뉴라이트는 참여정부 시절 기존 보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새로운 보수주의'였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지나친 정치화로 침체에 빠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사실상 소멸기에 접어든 걸로 평가됩니다.


사실상 소멸된 뉴라이트의 주장을 일본 극우가 10년 만에 다시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라이트의 논리가 지금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구로다가 사설을 통해 가장 문제 삼았던 건 '강점'이라는 역사의식이었고, 이는 구로다를 포함해 일본 정부가 지난 역사에서 감추고 싶은 치부입니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사도광산을 봐도 약속과 달리 강제성을 명확히 기재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사도 광산서 2km 떨어진 박물관에…'강제성' 언급도 없어(2024.7.29. SBS 박상진 기자)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n/?id=N1007740692 ]

이런 시도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강점'을 '강점'이라 부르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역사 용어 이상의 것을 잃게 됩니다. 강제 징용은 '자발적 노동'으로, 식민 통치는 '근대화'로 둔갑해 우리의 역사의식을 광복 이전으로 후퇴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강점 지우기 시도'를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1182423?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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