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대단치 않은 인간이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 같은 생각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옭아매려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맨 먼저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아직 아무런 실적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자신을 존경하면 악한 일은 결코 행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손가락질당할 행동 따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상에 차츰 다가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인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능력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라.
일을 끝내고 차분하게 반성한다. 하루를 마치고 그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의 잘못을 깨닫고 결국에는 우울해지고 만다. 자신의 한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타인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불쾌하고 어두운 결과로 치닫는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당신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피로에 젖어 지쳐 있을 때 냉정히 반성하기란 결코 불가능하기에 그 반성은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중략) 그렇기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느껴질 때는 자신이 지쳐 있다는 신호라 여기고 그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다.
자신의 모든 행위는 다른 행위와 사고, 결단 등을 이끌어 내는 요인이 되거나 혹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행위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없다.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일단 발생한 현상은 항상 어떤 형태로든 다음에 일어나는 현상과 단단히 이어져 있다. 먼 과거 옛 사람들의 행동조차 현재의 현상과 강하게 혹은 약하게 결부되어 있다. 모든 행위나 운동은 불변한다. 그리고 한 인간의 어느 작은 행위도 불변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심에서 태어난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체험한 적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힘들어 한다. 하물며 그것은 아직 체험하지 않은 것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공포심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승리자는 예외 없이 우연이라는 것을 결코 믿지 않는다. 비록 그가 겸손한 마음에 우연성을 담는다고 해도 말이다.
두려워하면 패배한다. 파멸하고 만다. 상대가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없던 곤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상황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겁먹고 있을 때, 스스로 파멸과 패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극단적인 행동, 짐짓 과장된 태도를 취하는 사람에게는 허영심이 있다. 자신을 크게 보이는 것,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것, 자신이 뭔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타인에게 각인시키길 원한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내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지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배욕에 따라 움직이는 지배다. 다른 하나는 누구의 지배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행하는 지배다.
자신에게 재능을 주어라.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습득하면 된다.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자신에게 시련을 주어라. 아무도 모르는, 오직 증인이라고는 자신뿐인 시련을. 이를테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서 산다, 혼자 있는 경우라도 예의바르게 행동한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티끌만큼의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을 때 스스로를 다시 평가하고, 자신이 고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진정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강력한 자신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
책 <니체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