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잘 되어있는 아파트고 출입 한 사람 모두 전수 조사 했으나 혐의 없음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행은 살인이 목적이다.
금품을 노린 강도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침입이 쉽고 범행 후 도주하기 용이한 곳을 노린다. 또 고층보다는 저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 대부분의 강도가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 저층을 선호하는 이유다.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 그것도 신형 아파트는 기피 대상이다. 특히 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는 범행이 탄로 날 경우 퇴로가 금방 차단되기 때문에 범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사건의 경우도 강도로 보기에는 모순이 많다. 작은방에는 범인이 장롱을 뒤진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훔쳐간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고, 침대 위에는 고가의 명품시계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보통 집 안의 귀중품은 안방에 놓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범인은 안방은 그대로 두고 작은방을 뒤졌고 게다가 없어진 물건도 없다. 이것은 범인이 강도로 위장하려고 연출했거나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 등 성범죄를 의심할 만한 것도 없었다.
2. 범인은 면식범이다.
범인이 아파트 현관문이나 창문을 강제로 연 흔적은 없었다. 숨진 이씨가 스스로 문을 열어줬다는 뜻이다. 범인이 평소 이씨와 안면이 있거나 친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범인은 집 안으로 들어온 뒤 태연하게 화장실을 이용했다. 이때 이씨는 안방에 있었다.
여성 혼자 있는 집 안에 낯선 방문자가 아침 일찍 찾아오면 경계하는 게 사람 심리다. 그런데도 이씨는 경계심 없이 범인이 화장실을 이용할 동안 거실에 있지 않고 안방에 들어가 있었다. 이것은 범인이 그만큼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했기에 가능하다.
3. 범인은 아파트 내부에 있다.
범행 현장인 S아파트는 보안이 철저하다. 범인이 외부에서 침입했다면 어디에든 흔적이 남아야 한다. 이중 삼중으로 된 보안장치를 뚫고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피해 갈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보안장치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것은 범인이 아파트 내부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욱이 범인은 이씨의 남편이 새벽같이 집을 나간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부부의 생활패턴을 알고 있거나 지켜보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범인이 아파트 내부인이라면 흔적이 남을 곳은 월패드다. 복도에 설치된 초인종을 누르면 월패드에 자동으로 방문자의 얼굴이 촬영된다. 이걸 피해 가는 유일한 방법은 초인종 대신 노크를 하면 된다. 아파트 내부인이 계단을 통해 14층으로 올라와 노크해서 현관문을 통과해 범행을 저질렀다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이다. 아파트 내부인은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쉽다.
4. 범행은 철저히 계획됐다.
범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고심한 정황이 역력하다. 범행도구를 집 안에서 찾고 화장실 슬리퍼를 이용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피해자의 몸은 흉기에 찔려 많은 피를 흘렸다. 범인에게도 적지 않은 피가 튀었을 것이다. 범인의 옷에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어야 한다. 범인이 화장실에서 피가 묻은 손 등을 씻었다고 해도 피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갔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범인의 몸에서 떨어진 핏방울은 없었다. 범인이 집 안에 들어올 때 범행 후 갈아입을 옷을 들고 왔거나 집 안에 있는 옷을 입고 나갔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이씨 집 작은방 장롱을 뒤진 것도 금품을 찾기보다는 입고 나갈 옷을 찾았을 수 있다. 범인이 화장실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나와 범행한 후 몸을 씻고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 묻은 옷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들고 나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은 충분했다.
5. 범인은 중년 이상의 여성일 확률이 높다.
범인은 피해자의 얼굴과 목을 집중적으로 흉기로 공격했다. 목의 급소를 노렸지만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고 10여 차례나 찔렀다. 그 사이 피해자가 양손으로 흉기를 막으면서 방어흔이 11개나 생겼다. 범인이 완력이 강한 남성보다는 노약자이거나 여성일 확률이 높은 이유다.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피해자가 경계심을 늦춘 것도 범인이 남성보다는 여성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