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은 언제나 부적절하다
들어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농담을 하는 건 힘들다. 준비시켜야 하므로 품이 많이 들고 힘들다. 그러나 절대로 농담할 분위기가 아닐 때 농담을 하는 것은 짜릿하다. 나도 생각이란 게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앞에서 화를 내는 사람 앞에서 농담을 할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농담이 나온다. 나는 곧 죽을 사람이나 실연을 한 사람 앞에서 헛소리를 한다. 그걸 들은 사람 중에 한 명은 웃는다. 바로 나다. 내가 웃는다. 이 타이밍에 농담이 나왔다는 사실이 일단 웃기다. 그 농담이 내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이다. 나는 울고 있는 사람 앞에서 미친 듯이 웃게 된다. 내가 한 농담이 아닌 것 같다. 분명히 농담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아무리 무의식이 한 짓인 것 같다고 주장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며, 사실은 나도 내가 그 농담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는 것을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분명히 내 착각일 것이다. 울고 있는 사람은 내 입에서 나온 농담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러다가 헛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나 웃지 않고 완전히 빡쳐버린 사람에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론상으로는 이렇다. 시간을 30초 돌리는 능력이 내게 있다면, 나는 돌아가서 다시 부적절한 순간에 농담을 하고, 다시 웃고, 다시 30초 돌리며 무한히 이 시간 속에 갇힐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말하건대 만약 30초 전으로 돌아가는 능력이 내게 있다고 해도, 나는 돌아가서 농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 정말이다! 이게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되지 않겠지만. 그만큼 이번에 일어난 부적절한 사건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며, 의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발 믿어 주기를 바라지만 당신은 믿지 않는다. 당신은 완전히 빡쳤다. 바로 그때 다시 농담이 나온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입에서 나오는 것들의 대부분은 농담도 아니다. 그냥 아주 이상한 소리다. 헛소리다. 웃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웃는다. 가끔 내 앞의 불쌍한 이도 웃는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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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이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