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해안에서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까지 흑인 노예들을 운송하는 항해는 대체로 50~80일 정도 걸리지만 길면 6개월까지 걸리는 수도 있었다.
이미 아프리카 내륙 지방에서 해안까지 먼 거리를 끌려와서 몹시 쇠약해진 이 사람들이 다시 장기간 배를 타는 것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노예무역에 사용되는 배들은 대개 100~300톤 급의 소형 선박들이었는데, 오직 상업 이익만을 고려하는 상인들은 이 작은 배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노예들을 태우려고 했다.
심한 경우에는 배 밑바닥의 짐칸에 500명의 노예들이 꾸역꾸역 채워지기도 해서, 마치 통조림 속의 정어리처럼 포개져서 바다를 건너야 했다. 대서양을 넘는 노예무역선은 그야말로 바다 위에 떠다니는 지옥이었다.
사슬, 족쇄, 촛불이 꺼질 정도의 산소부족, 식수부족, 탈수증, 전염병, 악취, 죽음의 공포,
범벅이 된 토사물과 용변, 채찍세례에 밀려 추는 춤, 저항하면 가차없이 잘리는 손발
노예들은 배 밑바닥 선창에서 6명씩 긴 사슬로 묶이고 다시 두 사람씩 발에 족쇄를 찼다.
선창의 공기는 너무 탁해서 이곳에 촛불을 켜 들고 들어가면 산소 부족으로 불이 꺼질 정도였다.
따라서 노예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끔씩 갑판으로 데리고 나와서 운동을 시켜야 했다.
이것은 물론 인도적인 의도가 아니라 단지 값비싼 ‘화물’을 안전하게 수송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일이었으므로, 채찍을 휘두르며 강제로 춤을 추도록 하는 가혹행위에 가까웠다.
배에 너무 많은 노예들을 실으면 그만큼 물과 식량을 실을 공간이 부족하게 되므로 결국 보급 부족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스페인 노예선에서는 보통 노예들에게는 하루 한 끼 식사만 제공되었는데, 옥수수나 조로 쑨 죽 한 사발과 물 단지 하나가 전부였다.
다른 나라 업자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네덜란드 인들이 운영하는 루안다~브라질 항로에서는 약간의 야자기름과 삶은 옥수수를 주었고, 프랑스 선박의 기록을 보면 아침 10시, 저녁 5시에 두 번 식사를 제공하는데, 카사바·옥수수·담배에다가 콩과 죽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식량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식수 부족이었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탈수증으로 큰 고생을 했다.
대개 노예들은 처음 바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멀미 때문에 많이 토했다. 무엇보다도 용변 문제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배의 일부 지점에서만 용변을 보게 되었는데, 모두 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자신, 혹은 남의 용변 위에서 누운 상태로 항해했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질·티푸스·홍역·황열병·천연두·말라리아 같은 병이 돌았고, 사망률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토사물·오줌·대변·땀 등으로 범벅이 돼 항해 말미에는 냄새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중에 뉴욕이 되는 뉴 암스테르담에서는 이 냄새 때문에 노예선이 항구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하며
또 이 배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 시간만 그곳에서 일해도 병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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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 주경철 교수, <문명과 바다>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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