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부터 원인불명의 속쓰림에 위장약을 수시로 먹으면서 자주 병원을 찾다가 1994년 5월에 최종적으로 위암 4기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위암 임에도 불구하고 약물치료를 받게되면 국가대표에서도 자격이 박탈되어 탈락이 될까봐 몰래 병을 숨기고 힘든 훈련과 항암치료의 고통스러운 투병을 계속해왔다. 당시 진통제가 없이는 생활이 불가하여 종양 제거 수술과 신경차단 수술을 받고 물 한모금도 입에 대지 못했다고 한다.
대회 이후에도 병원에 입원하면서 1995년 11월에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투병기를 취재할때 원래 모든 시합은 끝나봐야 아는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악착같이 살거라구요.라는 말로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으며 그만큼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위암으로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대회가 끝난지 반년도 채 안돼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직전에 안구를 비릇한 장기 기증을 원했지만 암 환자였고 진단 결과 암세포가 뼈와 온 신경에 전이된 상태라 불발됐다.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그는 사후 군무원 신분으로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사후에 장례식에서 체육훈장 백마장이 추서되었다.
더 안타까운 건 그의 사후 1년 뒤인 1996년에 어머니 이금자 여사도 아들을 따라갔고 하나밖에 없던 남동생인 송성대 역시 1998년에 어머니, 형과 같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