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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영화 ‘퍼펙트 데이즈‘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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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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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송희일 감독


https://www.newscham.net:443/opinions/column/109509?fbclid=IwZXh0bgNhZW0CMTEAAR2yvorOH6nGPVxa9pqwP9yPqjDck0GkFletdq6xxAy_D-PWBYlssCWBvJI_aem_rjB1z4AD5PnDc8i9FfebQg


많은 관객이 코모레비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매력적인 OST에 마음을 뺏겨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보이는데, 이 영화는 극우 재단의 기획하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크레딧에서 빔 밴더스가 특별히 감사를 표한 재단이 바로 '일본 재단 The Nippon Foundation'. 태평양 전쟁 때 A급 전범 용의자였던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비영리 기관으로, 교과서 개정 운동과 평화헌법 폐기를 주창하는 극우 단체들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자금력을 토대로 국제사회에 일본 보수계의 논리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일본 재단과 도쿄의 시부야구가 공동으로 추진한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맞아 낙후된 도쿄의 17개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이어 일본 재단이 영화 감독 빔 벤더스에게 홍보용 단편영화 제작을 의뢰한 게 <퍼펙트 데이즈>의 시작이다.


물론 영화 역사가 증명하듯, 제작 경로와 영화적 완성도는 별개의 두 트랙일 경우가 많다. 내가 느낀 무감흥은 누가 돈을 댔고 지원을 했냐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단지 영화 속 주인공 히라야마의 행위와 감정이 카탈로그처럼 정렬된 채 인공의 세계에 정박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바로 그것이 무감흥의 주된 이유다.


(…)


히라야마의 삶은 소위 미니멀리즘이라 말할 만큼 금욕과 절제에 지배되어 있다. 집안의 물건도 최소화되어 있고, 일상 생활도 강박적으로 반복적인 패턴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화장실 청소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가 하면 순간순간 햇빛을 채집하거나, 지난 시절의 전설적인 음반과 월리엄 포크너와 같은 고전 소설들을 즐기거나, 비스듬한 오후 햇살의 창가에 누워 순간의 충만함을 음미한다. 자족적이고 조율된 삶, 일본의 과거에서 날아온 엽서 같은 풍경들.

다시 말해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형화된 '일본적 풍경'이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 화장실 청소처럼 홀대받는 노동을 경건함을 가지고 묵묵히 수행하는 일본식 장인 정신, 절제된 삶, 반짝거리는 햇살에 대한 하이쿠적 감상, 문화 황금기 시대의 팝, 단골 식당과 선술집에서 혼자 느끼는 소확행. 우리가 익히 피상적으로 박제화한 일본적인 이미지들 아닌가. 국내외 그 어느 평도 이 영화와 오리엔탈리즘의 관계를 논하지 않는 게 기이할 정도다. 단순히 유럽의 백인이 일본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시아 일본을 정형화하는 그 시선 때문에 문제적이다.


실제 세계의 일상들 대신, 히라야마가 추구하는 일상의 목록은 다분히 인위적이고, 복고적이며, 힙스터스럽다. 구석구석 광을 내며 화장실을 청소할 것, 햇빛을 사진으로 찍어 채집할 것, 카세트테이프로 루 리드의 'Perfect Day'와 패티 스미스의 'Redondo Beach'와 같은 황금시대의 팝의 목록을 계속 상기할 것, 월리엄 포크너와 같은 고전 소설들의 목록을 이어갈 것, 그리고 누구로부터 침해되지 않는 자신만의 루틴을 따를 것. 즉 오타쿠의 목록으로 구축한 인공의 일상이다.


(…)


다만, <퍼펙트 데이즈>를 관람하는 부유한 북반구 관객들의 어떤 태도, 나뭇잎을 희롱하는 햇살과 향수 어린 70년대 OST에 감탄하며 자기 규율과 절제를 칭송하는 일련의 소비 행태가 자꾸 눈에 밟히게 된다. 실제 세계 속에서 오염된 타자들과 부대끼면서 현실을 바꾸고 행복을 길어 올리는 대신, 현실을 회피하고 각자 고립된 채 우아한 자기 관리, 자기 계발, 그리고 문화상품의 목록 속에서 자족의 미소를 짓는 유폐된 세계와 상당히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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