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대표하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절차가 장기화 국면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당초 우려됐던 대로 양사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 도출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무산 가능성까지 번지는 상황에서 양측이 세부 협상 논의 속도를 내고 연내 합병 출범에 도달할지 주목된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협상 막판 작업에서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합병에 대한 동의로 양측 대주주가 협상 테이블에 나왔지만 7개월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올해 1분기 내 본계약을 맺겠다는 목표가 상반기를 넘어 늘어지면서 합병 '무산설'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합병 절차가 늘어지는 배경에는 당초 예상대로 대주주 이해 상충이 꼽힌다. 티빙과 웨이브의 주요 주주만 10곳이 넘는다. 티빙 주주는 CJ ENM(48.9%), 젠파트너스앤컴퍼니(13.5%), KT스튜디오지니(13.5%), SLL중앙(12.7%), 네이버(10.7%) 등이다. 웨이브 진영엔 SK스퀘어(40.5%), MBC(19.8%), SBS(19.8%), KBS(19.8%) 등이 있다.
이미 티빙과 웨이브 주주들은 합병을 위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양측 주요 주주들은 합병비율과 굵직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도출한 상황이다. 티빙과 웨이브 합병비율은 1.6대 1로 잠정적으로 정하고 합병회사의 기업가치는 2조원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티빙이 웨이브를 흡수하는 식으로 가닥이 잡혔다.
합병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됐던 전환사채(CB) 상환 문제도 넘어갔다. 웨이브가 보유한 2000억원 규모의 CB를 합병 법인에서 상당 부분 분담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웨이브는 지난 2019년 11월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해 상환 기한인 오는 11월까지 상환 부담이 임박했다.
본계약 체결까지 세부사항에 대한 결정만 남은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난항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 간 합병 협상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으로 한 대주주가 까다로운 합병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 방송사보다 높은 대가 수준의 콘텐츠 공급 조건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해당 대주주를 SLL중앙으로 지목하고 있다. SLL중앙의 실적 부진이 IPO(기업공개)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어 수익성 강화를 위한 카드로 합병 이슈를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SLL중앙은 지난해 매출 5691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도 성적보다 소폭 후퇴했다. 영업손실도 516억원을 내며 2년 연속 적자 상태다.
SLL중앙은 현재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 준비에 돌입해 유리한 상장 조건 확보에 집중하는 상태다. SLL중앙은 상장사 콘텐트리중앙의 핵심 자회사로 '부부의 세계', '이태원클라쓰', '범죄도시', '재벌집 막내아들', '수리남', '나의 해방일지', '디.피.(D.P.)' 등을 제작한 국내 대형 콘텐츠 제작사 중 한 곳이다.
올해 3분기를 넘기기 전에 세부 논의를 마무리하는 것이 합병 성사 여부의 중요 기로가 될 전망이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콘텐츠 계약 만료 기한은 9~10월에 예정돼 있는데, 합병 결정이 이 기한을 넘기면 웨이브 진영의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고 합병 법인의 콘텐츠 수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게 된다.
합병이 내년을 넘어가면 통합 플랫폼 경쟁력 하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주 입장 차를 조율해 연내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당장 통합 플랫폼의 연내 출범은 장담할 수 없다. 국내 OTT 부동의 1위 넷플릭스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디즈니플러스를 따돌리기 위한 플랫폼 경쟁력 확보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가 플랫폼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콘텐츠 투자에 대한 빠른 대응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현재 넷플릭스가 올해 말 공개 목표로 '오징어게임2' 제작비로 1000억원대 비용을 투입하고, 디즈니플러스는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 총 400억원으로 회차당 올해 국내 최다 규모인 40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는 등 공격적 행보다.
최종 합병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티빙과 웨이브의 최대주주인 CJ ENM과 SK스퀘어를 제외한 주주들은 모두 10%대 지분율만 가지고 있어 합병 자체를 막을 방도는 없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있을 시 주주간 계약에 따라 합병 법인 측에서 반대 주주의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현실적으로 합병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일각에선 여전히 웨이브를 흡수하는 티빙의 합병 전략에 대해 반대 시각이 남아 있다. 지난해 티빙의 영업손실만 1420억원 규모였는데 같은 기간 웨이브 또한 804억원의 손실을 봤다. 웨이브의 적자까지 감수하기에는 티빙은 최근 1350억원을 투입해 KBO 온라인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후 가입자 증가 효과를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탄력을 받은 티빙 플랫폼 하나만으로도 넷플릭스와 겨뤄볼 만하다는 주장도 점점 힘을 받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6월 티빙의 MAU(월간활성이용자수)는 740만명을 기록했는데 1년 전과 비교해 200만명 가까이 늘었다. 반면 하락세의 넷플릭스는 1096만명으로 티빙과의 격차가 역대 최소치로 좁혀졌다. 웨이브는 432만명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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