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가 잘생겨서 핫게까지 갔던 충무공 정충신 장군은 사실 엄청 다사다난한 삶을 살다가 가심
선조시기 임진왜란때 처음 등장 그리고 인조시기 병자호란 직전에 돌아가심
광해군때도 신임받고 인조때도 능력을 인정받으신 분임
중인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 사이에 노비로 태어남(노비종모법)
그리고 권율 밑에서 일하면서 지내다가 임진왜란이 나고 권율이 있던 광주에서 왜구와 싸워 연승을 하고 이 사실을 평안도 의주로 피난간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야 하는데 왜적이 있는곳을 뚫고 먼길을 가야해서 위험하고 힘든일이라 아무도 지원을 못했지만 자청해서 어렵게 선조에게 장계를 올림
그리고 선조의 어명으로 노비에서 면천해주고 그 유명한 오성과한음의 이항복(권율의 사위)의 문하생이 되어서 글 공부를 함 또 무과에 합격해서 무관으로 양반까지 지냄 여기까지도 ㄹㅈㄷ 인생사인데 그 후가 더 대단함
[선조실록 75권, 선조 29년 5월 20일 우참찬 이항복이 왜적의 동태에 관한 서장을 올리다]
군관(軍官) 정충신(鄭忠信)이 부산의 왜영에서 돌아와 고하기를 ‘정사(正使) 일행의 원역(員役) 중 위내(圍內)에 있는 자를 여전히 포위하여 지키고, 부사(副使)가 있는 곳의 바깥도 여전히 포위하여 지키고 철수하지 않았다. 적의 정상을 잘 살펴보면, 겉으로는 부사가 어질다고 늘 말하기는 하나 속으로는 실로 의심하여 엿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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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쪽 정세를 파악하고 선조때 부터 잠복앤나염탐 능력를 보여줌 그리고 여진족 동태 파악도 함
그러다가 광해 집권 초에 정충신의 스승인 이항복이 폐모(인목대비 폐위)에 반대를 해서 유배를 가고 이때 정충신도 스승을 따라 감
그리고 광해군 집권 후기때 부터 다시 등용되서 염탐앤나외교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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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39권, 광해 11년 4월 19일
정충신을 오랑캐의 사절로 보내는 일을논의시키다다]
"정충신(鄭忠信)은 일을 알고 영리하니 이 사람을 오랑캐의 소굴에 들여보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급히 논의하여 처리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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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43권, 광해 11년 8월 14일]
정충신은 영리한 인물이니, 차관의 행색을 전혀 보이지 말고 몇 사람을 대동시켜 언춘과 함께 들여보내 적진의 정황을 염탐하게 한다면, 의리에 맞게 대처하면서 임기응변하는 것이 양쪽 모두 지장이 없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자문 한 통을 상세히 써서 중국의 각 아문에 보내 모두 곡절을 진술한다면 세상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고 후세에 대해서도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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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랑 마찬가지로 광해군도 신임함
인조반정후 인조2년쯤 급 역모에 엮이게 됨 ㅇㅅ;;ㅇ
정충신:
[인조실록 4권, 인조 2년 1월 17일 이우·권진 등이 이괄 등의 변란을 고하다. 이에 이들을 추국하다]
여기서 이괄의 난으로 한명련(여기도 노비출신이었는데 임란때 공으로 면천됨),정충신도 같이 역모를 일으켰다고 무고를 받아서 위험했는데 본인이 이괄의 난을 진압하면서 스스로 위험에 벗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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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4권, 인조 2년 1월 29일 도원수가 정충신이 이괄의 군사를 친 것을 알리다]
난을 진압한 공으로 진무공신에 올라감 이때부터 광해군때랑 비슷한 일을 함+군사적인 업무도 덤
[인조실록 7권, 인조 2년 12월 6일 정충신이, 오랑캐 세력이 분산되어 동쪽을 침범할 수 없게 되었다는 보고를 하다]
[인조실록 18권, 인조 6년 5월 18일 정충신을 불러 서로의 굶주린 상황과 청의 동태 및 방어 상태에 대해서 듣다]
인조정권이 호란을 대비 안 한것도, 띵가띵가 논 건 아님 대신 그 대비가 부족했던거임...ㅠ
이런 식인거...
[인조실록 5권, 인조 2년 3월 14일 부사 남이흥 안주 목사 정충신과 함께 오랑캐의 방어 등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이르기를
"오랑캐의 추장은 한낱 하찮은 자일 뿐이다. 우리 나라 수천 리의 지방에 어찌 적을 제어할 만한 사람이 없으랴마는, 찾는 데에 정성스럽지 못하므로 쉽게 얻지 못할 뿐이다. 지금 장신(將臣)들이 모두 들어가 지킨다는 것으로 말하면서 출전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정충신:
하니, 정충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본시 군사가 없는 나라인데 아무리 훌륭한 장수가 있더라도 누구와 함께 싸울 수 있습니까. 지금 10여 만의 무리를 뽑아서 1∼2년 동안 훈련시킨다면 요동(遼東)도 진격하여 빼앗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반드시 수어하려고만 하겠습니까. "
말년에 유배도 잠깐 갔다가 복직하심 이러고 몇년뒤에 정묘호란이 일어나고 정충신도 노력은 했지만 네...암튼 병자호란 1년전에 돌아가심
[인조실록 32권, 인조 14년 5월 4일 금남군 정충신의 졸기]
광해군후반~병자호란쯤 때 상황을 보면 ㄹㅇ 흥미진진함 이 시기를 다룬 웹툰<칼부림> 재밌어서 추천해 여기서 정충신도 나옴 영화나 드라마로도 나오면 좋겠지만 솔직히 너무너무너무 고구마라🙄 인기없을듯...
혹시 틀린 내용 있으면 댓으로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