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daum.net/v/20240806050908597
호스피스 의사에게 임종 선언은 일상이다. 그 안에서 반복해서 겪는 경험들이 있다. 첫 번째는 투병 중일 때는 오지 않다가 임종 후 우르르 몰려오는 지인들이다. 임종실이 협소하고 다른 환자의 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유족 외엔 참여가 어렵다고 양해를 구해도 평소 각별한 사이라는 이유를 들어 기어코 임종실에 들어오겠다는 지인들이 많다. 이들은 임종 소식에 격앙된 채 다른 환자에 대한 배려 없이 병동 복도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떠들기 일쑤다.
두 번째는 엄숙해야 할 임종 선언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다. 침상 곁에 서서 전화 통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추모는 온데간데없이 숨이 멎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부고 전화를 돌리기 바쁘다. 임종 선언 의례 중간에도 전화를 끊지 않는 유족들이 많다. 그게 그리 급한 일인지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세 번째는 과도한 조의 화환들이다. 고인의 빈소가 우리 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는 경우 호스피스센터 팀원들과 함께 조문을 간다. 장례식장을 드나들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복도와 엘리베이터 앞 접견실까지 빼곡히 들어차 통행마저 어렵게 하는 화환들이다. 고인을 추념하는 진심이 담긴 것인지, 아니면 유족에게 체면치레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이런 경험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한국 사회의 체면이다. 무심하게 살다가 임종 순간만은 지켰다는 체면, 추모보다는 주변에 부고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체면, 그리고 유족에게 화환으로 자신을 인증하는 체면 말이다. 이를 잘 꿰뚫듯 관, 수의, 음식, 빈소 크기 등 장례의 과정 곳곳에는 체면을 자극하는 상업주의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체면 때문에 부모의 편안한 임종을 막고 상급병원 중환자실에서 연명 치료를 받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체면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죽음 문화는 한 마디로 경박(輕薄), 즉 이해가 얕다. 살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한 고민도, 배움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 문화가 경박할수록 우리의 마지막은 더 고통스럽고 고독하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기사 읽는데 공감되서 가지고 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