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후 3대 항공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할 만큼 최고의 비행 실력을 갖춘 스타 파일럿. 뜨거운 인기로 유명 TV쇼에 출연하며 수많은 광고를 찍고 강연을 다니는 인플루언서 한정우(조정석). 상무와 함께한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순간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고 실직하게 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받아줄 항공사는 없고, 대출 이자와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한정우는 여동생의 신분으로 변신해 여성 파일럿 한정미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이후 여성의 모습으로 차별과 현실 등에 맞닥뜨리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을 하게 되는데...
1982년 개봉한 영화 <투씨>는 우연한 계기로 여장남자가 된 마이클(더스틴 호프만)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영화로 <파일럿>의 오래된 선배 격이다. 영국의 평론가 주디스 윌리엄스는 이 영화를 통해 겨우 며칠 동안 사회적 타자의 입장에 처해보고 그들의 곤경을 완벽히 이해하며 동조하는 것을 선언하는 행동을 혹평하면서 '투씨 신드롬'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파일럿>은 투씨 신드롬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사실은 투씨 신드롬이라고 부르기에도 자격이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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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혹평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항공사를 대표하는 파일럿이 문제의 '꽃다발' 발언 때문에 해고당한 뒤 업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점이다. <파일럿>에서는 윤슬기의 입을 빌려 여성 승무원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꽃다발이라고 하는 게 왜 칭찬이 아닌 성차별이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사내 윤리교육 영상에서도 가장 먼저 나올 이 메시지는 여전히 영화 바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누가 봐도 남자 같은데 여장인 걸 눈치 못 챈다는 게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손발이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기 때문에 여성처럼 보이지 않는다니.
더스틴 호프만은 <투씨>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스스로 멋진 여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장한 내 모습은 만약 파티에서 만났다면 말을 걸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왜냐하면 여장한 내 모습이 데이트를 신청할 만큼 육체적으로 아름답지 않았거든요. (...) 그래서 크게 울었죠. 그리고는 아내에게 '나는 이 영화를 꼭 하고 싶어. 내가 만난 여성 가운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매력적이었는데도 나는 그들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 나도 외모 지상주의에 세뇌됐다는 것을 알게 됐어'라고 말했어요. (...) 코미디 영화 투씨는 나에게는 결코 코미디 영화가 아니었어요."
<파일럿> 후기 중에 '여자에게는 늦고 남자에게는 빠르다'는 평이 회자되고 있다. 1937년 할배 더스틴 호프만도 느낀 이 감정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합의되지 않았다는 놀라움이 <파일럿>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담은 코미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공고하게 한다.
https://m.entertain.naver.com/movie/article/047/000244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