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숨긴 채 가사에 전념하며 살아가는 남편과 그런 남편의 비밀을 오해한 강력범죄수사대 에이스 형사 아내. 두 사람은 의도치 않게 거대한 사건에 함께 휘말리게 되고, 목숨을 건 공조에 나선다. 어딘가 기시감을 주는 듯한 설정과 이야기지만, 영화 ‘크로스’는 그마저도 재치 있는 비틀기와 유쾌한 코미디를 얹어 새롭게 풀어냈다.
오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영화 ‘크로스’는 정체를 숨긴 전직 요원 강무(황정민)와 사격 국가대표 출신 에이스 형사 미선(염정아)이 오해를 극복하고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며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두 사람 앞에 강무의 전 직장 후배 희주(전혜진)가 나타나면서 오해와 위기가 시작된다.
강무와 미선을 위험에 빠트린 거대한 음모를 설계한 사람이 누구인지, 두 사람은 어떻게 이 위기를 돌파해나가는지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음모 설계자의 정체가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긴 하지만, 영화는 이를 질질 끌지 않고 단박에 공개해버린다. 또 액션 영화답게 맨몸 액션부터 총기 액션, 자동차 액션까지 화려하게 담아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염정아와 전혜진의 일대일 몸싸움은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액션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 흔한 자동차 액션도 분뇨 수거차를 활용해 재미를 더했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구멍 없는 배우들의 티키타카는 액션과 코미디 둘 다 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황정민은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과 냉철한 국군정보사령부 특수 요원이란 두 개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염정아는 무심하고 털털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에이스 형사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담아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면서도 티 내지 않는 중년 부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빚어냈다.
믿고 보는 배우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찰떡 호흡의 코미디와 액션은 조연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와 어우러져 재미를 배가시킨다. 특히 희주로 분한 전혜진의 연기가 평범할 뻔했던 영화의 재미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다만 정체를 숨긴 요원 남편과 그의 일에 휘말리는 아내라는 구조가 익숙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설경구, 문소리 주연의 영화 ‘스파이’(2013)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물론 10년 전 영화보다 발전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크로스’는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내는 백점짜리 아내와 직장에서 인정받는 능력 만점 남편이란 고정된 틀을 비틀었다. 특히 미선은 강무보다도 뛰어난 사격 실력으로 위기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전 영화들과 다르다. 그래서 흔한 액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남-남 액션’이 아닌 ‘남-여 공조 액션’을 보는 게 가능했다.
‘크로스’를 연출한 이명훈 감독 역시 이 부분을 영화의 차별점으로 꼽았다.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5일 열린 ‘크로스’ 제작보고회에서 이 감독은 “보통 액션 영화에선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가 주를 이루지만, 이 작품은 남녀의 로맨스 액션물”이라며 “부부가 하나가 될 때는 통쾌한 액션이, 어긋날 땐 유쾌한 코미디가 나온다. 많은 분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크로스’는 지난 2월 극장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개봉 연기 끝에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이 감독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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