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함께 정신병원 입원 17일 만에 부천더블유(W)진병원에서 숨진 박아무개(33)씨의 진료기록을 확인한 10년차 정신과 전문의 강아무개씨가 지난 5일에 한 말이다. 유족이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복통과 장 폐색으로 박씨가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박씨에게 투여된 약이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오남용됐다는 것이다. 강 전문의는 이런 이유로 가족 등 법적대리인 등에게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고, 투약 이후 환자의 상태에 대해 면밀한 관찰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족은 병원이 상태가 악화된 박씨를 방치했다고 보고 병원장 양재웅씨 등 의료진 6명을 통상적인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유기치사죄를 앞에 내세워 형사고소한 상태다.
입원하자마자 다량의 알약 투여
한겨레는 유족이 병원 쪽으로부터 확보한 간호기록지, 경과기록지, 경리·강박 시행일지, 안정실(격리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일람표 등 각종 진료 관련 기록을 받아 강 전문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가장 먼저 지적된 건 입원 초반의 고용량 진정제 투여였다.
피해자인 33살 여성 박아무개씨는 지난 5월10일 다이어트 약 중독 치료를 위해 이 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 유학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박씨는 7년 전부터 내과병원 등에서 대표적인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대웅제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지나친 수면과 결벽증 등 디에타민 중독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의 몇몇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통원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부천더블유진병원에 최대 4주 예정의 입원을 하게 됐다.
입원 첫날 박씨는 경찰에 신고전화를 하는 등 낯선 환경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면담 뒤 그냥 돌아갔고, 피해자는 체념 상태로 입원을 받아들였다.
격리실 시시티브이 영상을 보면, 입원 첫날인 5월10일 한참이나 환복을 거부하며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던 박씨는 오후 3시55분경 의료진이 준 약물을 삼킨다. 경과기록지를 확인해보니 이날 복용한 약은 페리돌정 5㎎, 아티반정 1㎎, 리스펠돈정 2㎎, 쿠아틴정 100㎎, 쿠에틴서방정 200㎎이었다. 강 전문의는 “(의료진이) 하나의 약으로는 충분한 진정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들은 대부분 항정신성·향정신성 약물이고, 특히 리스펠돈은 고역가(단위 밀리그램당 강한 효과)의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들 약을 섞어 주사를 만들면 코끼리조차 쓰러뜨릴 정도의 ‘코끼리 주사’가 만들어지는데, 그만큼 강력한 약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부작용이 따른다.
약물로 ‘의식 저하, 소화기 및 근육계통 부작용’
이후의 간호기록지를 보면, 피해자 박씨는 졸림과 처짐을 느끼고 과도한 진정상태를 보이면서도 수시로 배고프다며 간식을 요구한다. 이는 피해자가 입원 이전 복용하던 디에타민의 성분인 펜터민 금단현상으로 인한 식욕 증가와 정신과 약물의 ‘식욕 항진효과’가 겹쳤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5월14일 기록을 보면 “횡설수설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19일부터는 섬망 증세도 기록돼 있다. 박씨의 어머니 임미진(가명·60)씨는 한겨레에 “입원한 이후부터 딸아이와 통화를 해보면 늘 정신이 혼미해 있었고, 딱 한번 면회를 했을 때는 비틀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강 전문의는 정신작용제 부작용으로 소화기와 근육계통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정신작용제의 흔한 부작용으로 항콜린 부작용(구강 건조, 장운동의 저하, 소화불량, 변비, 배뇨 곤란, 안구 건조, 섬망 등)과 함께 근육 계통의 부작용(근육 떨림, 급성 근긴장 이상, 좌불안석증, 신경이완제 악성증후군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의료진의 체크가 초반부에 거의 없었다”고 했다.
특히 “섬망은 정신과적 부작용이 아니라 소화기 계통 및 근육 부작용의 누적으로 생겼을 수 있는데, 이를 정신과적 증상으로만 보고 약으로 잠재우려 한 것 같다”고 짚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장의 흡수와 연동운동의 정체 상태가 지속되면서 장 폐색이나 패혈증성(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 쇼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막판에 “대변물을 흘렸다”는 진료기록도 소화기 폐색과 함께 배변 조절이 안됐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특히 “섬망은 정신과적 부작용이 아니라 소화기 계통 및 근육 부작용의 누적으로 생겼을 수 있는데, 이를 정신과적 증상으로만 보고 약으로 잠재우려 한 것 같다”고 짚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장의 흡수와 연동운동의 정체 상태가 지속되면서 장 폐색이나 패혈증성(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 쇼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막판에 “대변물을 흘렸다”는 진료기록도 소화기 폐색과 함께 배변 조절이 안됐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약 못 먹자 더 강한 ‘주사제’ 사용
그럼에도 고용량의 진정제 투여는 사망하던 날까지 쭉 지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투약기록을 보면, 약 때문에 졸리고 처진 피해자가 약을 삼키지 못하자 후반으로 갈수록 경구약보다 주사제가 쓰였다. 피해자가 약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자기 몸을 주체 못하는데, 오히려 ‘역가’가 높은 주사제를 쓴 것이다. 결국 박씨는 5월26일 저녁 격리실(안정실)에 갇힌 채 복통을 호소하며 문을 두드렸으나 병원 쪽은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호사와 간호조무사는 5월27일 0시30분 박씨의 손과 발, 가슴을 침대에 두 시간 동안 묶어놓았다. 이후 박씨는 숨을 헐떡이고 코피를 흘리면서 강박에서 풀려났지만, 그로부터 1시간30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급성 가성 장폐색’을 사인으로 추정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01459?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