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 의료공백 불안·공허감 커…병원 인근 상권 몰락
공공의료원 설립 거북걸음…병원 재개원 정치권 공약도 헛구호
"밤 되면 병원 근처로 지나가는 것이 무서울 정도죠."
지난 1일 경남 김해시 외동 옛 김해중앙병원 근처에서 만난 주민 한모(65) 씨가 손자 손을 잡고 병원 앞을 지나며 한숨처럼 내뱉는 말이다.
인구 53만여명이 사는 김해시 최대 규모 종합병원이던 김해중앙병원이 지난해 10월 부도로 병원 운영을 중단하고 폐업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재개원은 감감무소식이다.
환자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렸던 병원 출입구와 119구급차가 오갔던 응급실 철문은 굳게 닫혔고 이제는 일부에 녹까지 슨 모습이다. 병원 출입구 유리창엔 신탁부동산 공매 경고문이 붙었다.
452병상 규모 김해중앙병원은 시 관문에 위치한데다 도심 속 아파트 단지와 상가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병원 폐업으로 인한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병원 주변 약국, 의료기기, 식당, 카페 등이 줄줄이 문을 닫는 등 상권이 몰락했다.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며 불을 밝혔던 병원에 불이 꺼지면서 주민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공허함도 크다.
주민 김모(42) 씨는 "시내 중심가 병원 응급실이 사라지면서 밤에 아이가 아프면 덜컥 겁이 나고 불안하다"며 "병원이 사라지고 난 후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정말 크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바람인 재개원도 쉽지 않다.
이 병원 이사장은 3차례에 걸쳐 법원에 개인회생신청을 하고 오는 10월 18일까지 개인회생 계획안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자금난에 시달려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병원이 부도로 폐업하면서 500여명의 직원에 줘야 할 체불임금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시는 지역응급의료센터는 타 병원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지만, 지역 의료공백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해시가 나서서 추진하는 경남 동부권 공공의료원도 이제 공공의료원 설립 타당성 및 민간투자 적격성 조사용역이 진행되고 있어 신규 개원까지는 5년가량이 더 걸려 하세월이다.
김해시보건소 관계자는 "병원 이사장의 개인회생 계획안이 법원에 제출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기다리고 있지만 솔직히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이전처럼 병원 정상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공매 절차를 통해 병원을 운영할 새로운 주인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며 "김해를 비롯한 경남 동부권 공공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공공의료원 설립에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35만여명이 사는 양산시 중 10만여명이 거주하는 동부권 유일한 24시간 종합병원인 웅상중앙병원도 경영난으로 지난 3월 폐업에 들어간 후 5개월째 병원이 굳게 닫혔다.
폐업 이후 병원 주변 의료기기, 약국, 식당, 상가 등은 문을 닫거나 휴업 상태다.
300병상을 갖춘 24시간 응급의료기관이던 병원이 5개월째 폐업하자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웅상읍 주민 남모(55) 씨는 "당장 병원에 가야 할 위급한 상황에 놓일 수 있어 막막하고 겁이 난다. 병원을 볼 때마다 지금의 지방의료 현실을 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 병원 직원들도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것은 물론 마땅히 받아야 했을 임금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병원 폐업 후 치러졌던 지난 4월 총선에서 각 당 출마 후보들은 저마다 신속한 병원 재개원을 공약하기도 했지만, 현재 아무런 진전도 없는 헛구호가 됐다.
주민 강모(66) 씨는 "총선 때 전국 어느 곳보다 여야 간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지역구에서 후보들과 각 당이 폐업한 병원을 직접 찾거나 주민간담회를 통해 신속한 재개원을 약속했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나 몰라라 한다"고 비판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병원 재개원을 추진하더라도 지역에 근무하며 정주할 의사와 간호사 등 필수 의료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해 열악한 지방의료 실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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