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승무원을 꿈꾸던 20대 A씨의 행복한 일상이 악몽의 연속으로 바뀐 건 지난 2021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B씨에게 수 차례 성폭행을 당하면서 A씨 삶은 무너져갔다. 심각한 충격으로 A씨의 지능 수준이 4세 수준으로 저하될 정도였다. 동요를 불러 달라고 하거나, 아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A씨 부모의 마음도 찢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아버지 C씨의 절박한 물음에 A씨는 말을 잇지 못하다 작은 목소리로 “삼촌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고 짧게 답했다. C씨는 곧장 오랜 지인인 B씨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묻자 “미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B씨는 함께 여행을 다니고, 가족 경조사를 챙기는 각별한 사이였던 터라 A씨가 느낀 배신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C씨는 곧바로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하려고 했으나, 당장 시급한 건 A씨에 대한 치료였다. 병명은 ‘알 수 없는 스트레스로 인한 인지 능력 장애’. A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경찰은 검찰에 ‘수사를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한다’는 뜻을 알렸다. A씨는 치료로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지만 길가에서 우연히 B씨와 마주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가 자살하면서 수사는 벽에 부딪쳤다. 피해자 진술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경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이준태 대전지검 논산지청 검사는 “철저한 수사 만이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보듬을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피해자 유품과 휴대전화기, 차량 블랙박스, 의무기록, 상담일지 등까지 철저히 조사했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얻은 결정적 단서 가운데 하나는 피해자가 다소 병세가 호전됐을 때 쓴 다이어리로 B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모텔을 가기 싫은 데 가자고 하고, (그 곳에서) 이상한 짓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증거 능력 확보를 위해 피해자 친필 감정까지 마쳤다.
이 검사는 “유품 가운데 ‘성관계 동의 X’라는 메모와 함께 검찰 지원으로 A씨가 지역 심리 상담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 했다’는 내용도 찾았다”며 “A씨 차량 블랙박스에서 B씨가 신체 접촉을 하려는 걸 거부하는 내용까지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B씨가 A씨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며 접근, 함께 탑승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검찰의 끈질긴 추궁에 B씨도 범행 일시·장소 등 일부 사실 관계는 인정했다. 하지만 끝까지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수사 결과 오랜 기간 동안 친가족처럼 지냈던 관계를 악용한 ‘그루밍 성범죄’라고 결론내렸다. 법원도 검찰 측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 6월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또 B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모텔을 A씨가 먼저 가자고 했다’ ‘오히려 난 말렸다’ ‘자살한 건 아버지와 불화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다닌 여러 증언을 확보해 B씨에게 사자 명예훼손 등 혐의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 검사는 “지금도 마음이 아픈 부분은 15년을 친하게 지낸 사이라서 인지, A씨가 생전에 B씨 가족을 끝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라며 “반면 B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은 물론 현재까지도 재판에서 A씨와 연인 관계였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벼운 접촉조차 거부했는데, 성관계를 동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끝까지 범행의 실체를 규명해 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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