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조세이) 탄광 수몰 조사를 두고
일본 역사학계가 주목하고있는데
장생 탄광
= 규모는 크지만 안전을 무시하고 지어진 탄광이라 조선인을 많이 고용했기에 "조선 탄광"이라고도 불렸음.
그나마 있던 일본인도 대다수 아이누, 오키나와인(3등급 시민)들
1941년 이 탄광은 수몰해 183명이 그대로 수장되었고
그중 136명이 조선인.
지금 남은 것은 사진에 보이는 피어(배기구 일부) 뿐.
일본정부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유해 찾는것을 포기했으며
이 탄광은 그대로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민간인 단체가 "유족들이 전부 사라지기전 유해를 돌려주자"는 취지로 민간 다이버를 고용,
이번에 저 피어를 통해 내려보냈음..
다이버왈
ㅡ 유해들이 있을 갱도는 무사해보임.
ㅡ 하지만 갱도로 들어갈수있는 길은 퇴적물로 막혀있음
ㅡ 만약 피해없이 갱도로 들어갈수있다면 유해도 찾을수있을것
이라고하여 일본 역사학계가 그당시 유해와 탄광 내부, 의복, 도구 등등을 관찰할수있을거라고 주목하고있는중.
유해찾는다고 (역사현장을) 훼손시키면 안된다고 반대하는 역사학자도 있지만
민간단체는 살아있는 유족들에게 유해를 돌려주는게 먼저라고 답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