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화만을 떼놓고 들여다 보면 <파일럿>은 아쉬운 지점이 적지 않다. 제 아무리 코미디라고 해도 너무 ‘그렇다고 치고’ 하며 들어오는 개연성 부족은 가장 큰 아쉬움이다. 여장을 해 한정미로 항공사에 취직한 한정우(조정석)를 늘 가까이서 봐왔던 후배 서현석(신승호)이 같이 비행기를 몰면서도 모른다는 건 어딘지 상식적이지가 않다. 게다가 심지어 서현석은 한정미에게 마음이 있는 듯, 계속 플러팅을 한다.
또한 항공사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을 하고 채용되는 과정에서도 저게 가능할까 싶은 개연성의 허점들이 적지 않다. 여성 파일럿을 뽑아 사내 입지를 굳히겠다는 노문영(서재희) 대표의 야망도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정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단박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몰랐다는 건 너무 안이한 설정이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구멍이 숭숭 뚫린 개연성 사이를 조정석이라는 코미디 장인이 이리 뛰고 저리 뒤며 웃음으로 채워넣는다. 빈구석들에 고개가 갸웃해질 때, 한정미와 한정우를 오가는 조정석의 코미디가 웃음을 터트리게 함으로써 다음 상황으로 넘어간다. 이러니 원맨쇼라는 표현은 그저 과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 된다.
더 아쉬운 지점은 이 영화의 중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는 젠더 이슈에 있어서 한 발 빼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색깔도 애매해진 <파일럿>의 선택이다. 애초 한정우가 모든 걸 잃게 되는 상황 자체가 젠더 문제로 시작된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직원들 외모 지적질 하는 상사 때문에 곤란해진 분위기를 막으려 한정우가 나서게 되면서 그 영상이 유포되고 터진 젠더 이슈였다.
그러니 이 문제로 인해 모든 걸 잃은 한정우는 어쩔 수 없이 여장까지 하고 다시 일을 하게 됨으로서 갖게 된 젠더 문제를 좀더 실제 느끼며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젠더 이슈가 전면에 나오는 걸 의도적으로 피하려 한다. 자칫 젠더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선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되면서 영화는 보다 분명하게 내세울 수 있는 메시지를 잃었다.
따라서 조정석이 여장을 하고 펼치는 코미디만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인데, 이것은 영화로서는 아쉬운 지점이다. 그 코미디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영화가 남기는 여운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젠더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 민감할 수 있었겠지만 영화의 서사 자체가 젠더 문제를 떼놓고 풀어내기 어려웠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지점에서 주저한 부분은 너무나 아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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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조정석이 빵빵 터지는 원맨쇼로 채운 아쉬움과 아슬아슬함의 실체(‘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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