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공민왕-노국대장공주
공민왕은 미치기 전까지 개혁군주로서 노력해 가면서 기황후의 동생 권신 기철을 죽이고 망조가 들던 고려를 다시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
그 곁에는 몽골 황족인 아내 노국대장공주가 있었는데 노국공주는 자기 조국이었던 몽골을 버리고 남편을 내조할 정도의 찐사로 공민왕과 함께함
그랬기 때문에 공민왕은 노국공주만 사랑했고 노국공주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었던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
공민왕은 노국공주에게 본명 대신 왕가진이라는 고려 이름을 지어 주었을 정도로 노국공주를 사랑하며 총애했고
노국공주 역시 공민왕이 원나라의 복장에서 고려의 복장으로 전부 갈아입으라는 명에 바로 따랐을 정도로 공민왕의 개혁정신에 충실하게 보필함
문제는 노국공주가 30대 중반까지 한 번 유산한 것을 끝으로 20년째 아이를 낳지 못했던 난임이라는 점.....
이것 때문에 후궁들까지 들였으나 공주가 슬퍼하자 공민왕이 전각에 일체 가지 않아서 노국공주는 안심했다고 함
그러다 노국공주는 결혼 20년만에 회임을 하게 되는데 이게 온 나라의 경사가 아니라 나라가 망할 파국의 시작일 줄은 아무도 몰랐음
노국공주는 앞에서 말하다시피 30대 중반, 35~36세의 노산이었고 그 당시 30대 중반은 젊은 나이가 아니라 40대 중반에서 후반과 같았음
게다가 그 상태로 노산인 공주가 회임하고 나서 잔병이 많아지면서 공민왕이 직접 병을 돌볼 정도로 두 사람의 애정이 돈독했지만
그런 노국공주가 결국 하루를 넘게 해산하다가 아이와 함께 난산으로 둘다 죽은 것임 이 일로 공민왕은 완전히 미쳐버리게 됨
어떻게 미치고 어떻게 망했냐고? 남색에 빠지고 양성애자가 되면서 자제위랑 놀아남
개혁군주로서의 정치는 신돈이라는 중에게 맡기고서 자기는 정신을 놓았음 그렇게 고려라는 나라는 공민왕을 끝으로 완전히 망해버리는 발판을 삼음
원앤온리라서 망사를 넘어 나라가 망함! 공민왕은 오로지 노국공주 하나만 보고 살았지만 왕이 원앤온리면 망한다는 지름길을 보여주는 역피셜이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