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실거래 사례로 감정평가,
시세반영보다 ‘짐작’에 가까워
공공이 비싼 가격에 매입할 수록
입주자의 임대료 부담은 더 커져
전문가 “시장성 분석 병행돼야”
서울 강서구의 화곡동의 5층짜리 매입임대주택. 이곳은 비싼 임대료로 인한 미계약 사태로 2년째 입주가 지연되고 있다. 심윤지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5층짜리 A신축빌라. 2021년 11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매입 약정을 맺고 지어졌다. 방 2~3개 중형 평형(전용면적 50~84㎡) 신축이지만 5호선 까치산역에서 도보로 20분이나 떨어져 있다. 이곳의 호당 매입 가격은 4억원에서 6억3000만원에 달한다.
빌라의 매입 과정을 잘 안다는 공인중개사 B씨는 “건축업자가 분양과 매입임대를 놓고 고민하길래 ‘분양을 하면 물량 소진까지 2~3년은 걸릴테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공공에 한번에 팔라’고 조언했는데, 분양가보다도 비싼 가격에 팔았더라”며 “역과 먼 빌라를 나라에서 저렇게 비싸게 사줘도 괜찮냐”라고 반문했다.
정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매입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문제는 주택 매입 가격이다. 정부가 ‘적정 가격’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고가 매입’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공공이 비싸게 매입하면 임대료가 높아져 입주자를 찾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시세보다 비싸지 않다’는데… ‘시세’가 없다?
공공이 A빌라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다는 B씨의 주장은 사실일까. SH는 2개 감정평가 법인이 각각 감정평가한 금액의 산술 평균 금액으로 매매대금을 결정한다. 고가 매입을 막기 위해 상한선도 두고 있다. SH 관계자는 “감정평가가 시세를 반영해 이루어지는 만큼 시세보다 비싸게 샀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A빌라의 감정가격은 시세를 ‘반영’했다기보다 시세를 ‘짐작’한 가격에 가깝다. 1~2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화곡동에서는 대형 평형 신축빌라가 실거래된 사례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20년~2024년 화곡동에서 매매된 전용면적 60㎡ 이상 신축빌라 65건(건축년도 2년 이내) 중 매입임대주택이 아닌 거래는 단 2건에 불과했다.
1~2개 실거래 사례만으로도 감정평가는 가능하다보니 정부의 매입 가격이 시장가치보다 고평가되는 일이 발생한다. 2022년 이후 빌라 매매 수요는 빠르게 얼어붙었는데, 감정평가와 매입은 부동산 상승기때 한창 ‘뻥튀기’된 가격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도 문제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감정평가사)는 “화곡동에서는 전용면적 30㎡ 안팎의 신축빌라가 3억원대에 거래되는 사례가 가장 많다”며 “‘전용면적 84㎡는 6억원대 정도가 될 것’이라는 짐작으로 감정평가를 이루어졌을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른 매입임대 주택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1월 매입한 한 B빌라는 방2개, 화장실 1개가 있는 소형평형이 최고 6억원, 방 3개에 화장실 1개가 있는 중형 평형이 7억원에 육박한다. 역시 감정평가법인 2곳이 감정평가한 액수의 산술평균으로 산정됐다.
화곡동의 공인중개사 C씨는 “화곡동 빌라 매매 시장이 워낙 얼어붙어 지금 이 정도 가격을 감당하겠다는 실수요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자들 외면하는 이유도 “결국은 가격”
공공이 빌라를 비싼 가격에 사들이면 일단 입주자들이 부담해야 할 임대료가 비싸진다. A빌라의 경우 중산층 3~4인 무주택 가구에게 시세의 90% 공공전세로 공급됐다. 임대료가 3억6000만원(전용면적 62㎡)에서 4억6000만원(전용면적 84㎡)으로 책정됐다. 강서구의 평균 전세가율을 고려해 매입 가격의 80% 수준으로 공급된 것으로 보인다.
수요자들은 외면했다. A빌라는 2022년 11월과 이듬해 6월 두 차례 입주자를 모집했으나 입주자로 선정된 15가구 전원이 계약을 포기했다. A빌라는 준공 이후 2년이 넘는 현재까지 입주 개시를 하지 못하고 빈 집으로 남아있다.
공공이 매입한 가격이 그 지역의 실거래가가 되고, 시세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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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액=적정가격’ 공식이 위험한 이유
정부는 매입 가격을 한없이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는 사람 뿐 아니라 파는 사람도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거래가 성사된다는 것이다. ‘고가 매입’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매입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가 공급 급감으로 이어진 전례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4월 서울 성북구의 한 미분양 빌라를 고가에 매입했다는 논란이 일자 LH의 매입가격 기준을 ‘감정가’에서 ‘원가 이하’로 낮췄다. 2022년 1만4054호였던 공급실적은 2023년 4610호로 3분의 1토막이 났고, 실적 달성률도 46%에서 23%로 줄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매입 기준을 ‘감정가’ 수준으로 다시 완화했다.
하지만 기계적인 감정평가에 의존하는 매입 방식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고가 매입’ 논란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31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