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경
사후 297년 된 지금까지 단순 과학자를 넘어 인류를 대표하는 정점급 지능을 가진 천재로 꼽힌다. 물론 이런 식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누군가는 플라톤을 최고로 치고, 어떤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최고로 치는 등 여러 후보가 있겠지만, 뉴턴은 수많은 위인들과 비교했을때 결코 부족하지 않은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수학에서 미적분법 창시, 물리학에서 관성질량, 중력질량 같은 질량이라는 비례상수 개념을 처음으로 제대로 확립하며 후대 과학을 파격적으로 발전시킨 뉴턴 역학 체계 확립, 이것에 표시된 수학적 방법 등은 자연과학의 모범이 되었고, 빛의 입자성을 증명하는 '광학'을 발표해 빛의 성질에 대한 전례없는 발전을 이뤘다. 또한 뉴턴식 망원경을 개발해 천문 관측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과 스스로 창시한 중력 이론 사이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태양중심설에 관한 마지막 의문점을 제거하여 천문학에도 웅장한 업적을 남겼다. 사상면에서도 역학적 자연관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뉴턴 역학(고전역학)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등장 전까지 과학계의 가장 큰 거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그마저도 주식투자는 대실패
뉴턴이 남해 회사(South Sea)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버블이 터지기 훨씬 전인 1713년 무렵이었다.
그러다 1720년 초 주가가 조금 오르기 시작하자 뉴턴은 적은 차익을 내고 South Sea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연초에 128파운드에 불과했던 South Sea 주가가 2월엔 175파운드로, 3월엔 330파운드로 막 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나 주가가 계속 오르자 뉴턴은 소량의 주식을 재매입했고 4월에 재매입한 주식을 다시 전량 처분해 이번엔 상당한 매매차익을 거뒀다.
여기까진 뉴턴의 주식투자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초반에 쏠쏠하게 익절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뉴턴에겐 카오스(chaos)였다. 그가 주식을 전량 처분한 뒤에도 South Sea 주가는 상승을 멈출 줄 몰랐고, 급기야 6월엔 1,000파운드까지 치솟아, 3개월 만에 3배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뉴턴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게다가 자신과 달리 South Sea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던 친구들이 이 기간에 어마어마한 부를 쌓는 걸 뉴턴은 속 쓰리게 지켜봐야 했다.
--익절했더니 연일 상한가를 침. 존버하던 친구들이 돈방석에 앉는거 보고 열받아 그만...
결국 뉴턴은 7월 들어 뒤늦게 주식시장에 다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이번엔 더 많은 돈을 들여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
뉴턴은 이때 과거와 비교도 안될 만큼의 거액을 투자했다.
심지어 돈을 차입까지 했다.
그야말로 몰빵을 넘어 마진투자까지 한 것이다.
지난 3개월동안 얻지 못했던 기회수익을 한꺼번에 만회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가 7월에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든 때가 바로 South Sea 주가가 고점에 달한 때였다.
주가 버블은 그가 주식시장에 다시 뛰어든 지 2개월만에 터지기 시작했고, 주가 폭락은 연말까지 이어져 12월엔 연초 수준까지 추락했다.
-- 대출까지 써서 들어갔더니 아뿔싸! 고점이었다.
결국 뉴턴은 주가 폭락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주식을 손절, 그의 전 재산의 90%를 날려 버렸다.
-- 개씹떡락 후 눈물의 손절...
I can calculate the motion of heavenly bodies, but not the madness of men.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하지 못하겠다.
-뉴턴-
뉴턴이 보유한 주식은 한때 평가이익 7,000파운드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끝내는 2만 파운드를 손실했다. 요즘 가치로 따지자면 20억원 이상의 거액을 잃은 것이었다.
뉴턴의 주식 투자 실패는 정석적인 주식 투자 실패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