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 정말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제가 네 살 때 돌아가셨어요. 사고로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직도 그런 선택을 하신 이유는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제가 여섯 살 때 재혼하시면서 분가를 해 헤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할머니랑 같이 살았어요. 도시락 반찬은 항상 김치였죠. 그래서 제 별명이 짠지였어요. 이런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13살 때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 배달을 다녔어요.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이했어요. 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말았거든요. 이때 저는 처음으로 ‘왜 나는 항상 부족하고 어렵게 사는가?’라며 세상을 원망했어요. 그 후 작은아버지와 같이 살게 됐는데, 작은아버지는 소작농이셨어요. 작은어머니가 지병으로 오래전에 돌아가셨고요. 그래서 제가 집안일은 다했어요. 농사일도 도와 제 손은 항상 부르터 있었어요
생각하기도 싫은 중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어렵게 천안공업전문대학교에 입학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막노동을 나갔죠. 일당으로 5만 원 정도를 받았어요. 방학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이 철근공사장에 가서 방학 내내 일을 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 때 취득한 캐드 자격증 (컴퓨터로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자격증)으로 병역특례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1997년이었는데, 일하면서 월급 60만 원에 식비 10만 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돈으로는 서울에서 생활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고모 댁에 얹혀살았죠. 얹혀살면서 60만 원은 모두 적금을 들고 1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텼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고모 집에서 살 수 없잖아요. 그때 주식으로 돈을 벌어보려고 했어요. 회사에서 4,000만 원 정도를 모았었는데, 그중 2,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했어요. 결과가 어땠냐고요? 3개월 만에 싹 다 날립니다. 정말 화나더라고요. 병역특례가 끝나고 저는 주식학원에 다니면서 주식투자를 다시 했어요. 그리고 남아 있던 2,000만 원을 6개월 만에 깡그리 날렸어요. 술이라도 마시거나 옷을 제대로 사입었다면 아깝지는 않았을 텐데, 주식으로 한순간에 탕진하니 정말 허무했어요.
고모 집에서 나와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 돈도 받는 일을 찾으려고 했어요. 찾아보니 원양어선을 타거나, 도자기를 굽거나, 모텔을 청소하는 것 정도가 있더라고요. 그중 모텔 청소가 가장 나아보였어요. 그래서 모텔에 들어가 청소도 하고, 객실 관리나 고객 응대 등도 배웠어요. 그렇게 2년을 일해 6천만 원 정도를 모았어요. 이 돈을 어떻게 불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샐러드 배달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샐러드 가게를 차립니다. 어떻게 됐겠어요? 샐러드의 ‘샐’ 자도 모르는 사람이 샐러드 사업을 했으니…. 왜 샐러드 사업을 하려고 했을까요. 정말 쫄딱 망했습니다.
또 망하고 나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요. 가족도 없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하는 일마다 다 망하고…. 그런데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우리는 정말 부전자전이다. 나까지 이럴 순 없겠다.’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그래서 한 달간 은둔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한 번 일어섰습니다.
저는 다시 모텔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모텔 종사자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모텔이야기’라는 카페가 눈에 들어 오더라고요. 그 카페가 제법 커지니까 카페 내에서 구인·구직이 활발하게 이뤄졌어요. 그때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텔에서 2년 넘게 일했으니 모텔과 관련한 사업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2005년에 ‘호모펜 닷컴’을 시작합니다. 호모펜은 호텔, 모텔, 펜션의 줄임말이에요. 카페에서 모텔 종업원들의 구인구직을 도와주고 모텔과 치약, 칫솔 등을 납품하는 회사와 연결해주곤 했어요. 처음에는 구직이나 납품 견적문의가 많이 들어와서 성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모텔사장님들이 저한테 견적만 받아가고 원래 거래하던 업체한테 다시 가서 ‘신생 업체도 칫솔을 100원에 납품할 수 있다는데 왜 당신은 120원에 납품하느냐?’라고 하면서 가격을 낮추더라고요. 그 업체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실적은 나오지 않고…. 이것도 망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절망스러웠어요. 손대는 것마다 망하니까‘사업할 주제도 안되는데, 내가 미친 짓을 하는 건가’라는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하늘이 저에게 선물을 보내줍니다. 바로 ‘모텔투어’라는 카페입니다. 모텔이야기가 망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모텔투어 운영자가 “사정이 생겨 운영을 못하게 됐으니 이 사이트를 인수할 생각이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모텔 청소부터 다시 하기보다는 카페를 운영해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600만 원남짓한 돈 중에서 500만 원을 털어 인수했습니다.
모텔투어를 인수하고 난 뒤 처음에는 모텔 광고를 받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회원을 20만 명까지 모집했지만 광고는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영업을 나가 모텔들을 돌아다니며 홍보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손님들 커피 타주고 룸서비스도 해주면서 사장님들 눈에 들려고 노력했죠. 그러던 어느날 친하게 지내던 사장님이 ‘요즘 손님이 왜 이렇게 줄었지?’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광고를 맡겨달라고 했죠. 만약 손님이 늘어나지 않으면 전액 환불해주기로 하고 100만 원짜리 광고를 계약했어요. 광고를 낸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제가 치킨도 시켜주고 룸서비스도 해줬어요. 그러다 보니 그 사장님의 모텔 월 매출이 3개월 만에 8천만 원에서 1억 3천 정도로 뛰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제 카페의 광고 효과를 사장님에게 알릴 수 있었어요. 마침 사장님이 모텔을 5개나 가지고 계셨고, 아는 모텔 업주분들도 20분이 넘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의 소개로 한 번에 50여 개의 모텔 광고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 카페가 점점 유명해지자 ‘모텔투어’라는 상표권을 누가 빼앗아가 버렸어요. 저는 사업을 잘 몰랐기 때문에 상표권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상표권을 뺏어간 측에서 3억 원을 주면 다시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 3억 원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그냥 카페 이름을 ‘야놀자’로 바꿨습니다. 어릴 적 친구 이름을 부르며 ‘누구누구야 놀자’ 할 때 그 행복하고 설레는 기분을 다들 느껴보셨죠? 이 기분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놀 수 있게끔 해보자고 해서 ‘야놀자’라는 이름을 택했어요.
야놀자 이수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