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을 달군 영상이 있다. 어반자카파의 멤버이자 가수 조현아가 오랜만에 솔로로 컴백한 ‘줄게’ 무대 영상이다. 이 무대는 의상, 표정 연기, 라이브 실력, 음악이 모두 당황스럽다는 반응으로 유명해졌다. 이렇게 어떤 콘텐츠 하나가 유명해지면 댓글 창에는 누가 더 웃기게 조롱하는지 대결이 벌어진다. 콘텐츠만큼이나 조롱하는 댓글도 화제를 모은다. 대상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유명인이 망신당하는 모습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것을 ‘휴밀리테인먼트(humilitainment)’라고 한다. 창피(Humili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줄게’ 무대와 함께 거론되는 ‘깡’ 열풍이다. 2017년 발매되었던 비의 노래 ‘깡’은 밈으로 승화되면서 2020년 역주행했다. 유명인이 망신당하고 조롱받는 것을 보는 행위는 자신보다 상황이 더 나쁜 사람들을 떠올리며 상대적으로 위안을 얻는 ‘하향 비교’의 효과가 있다. 미디어의 노출로 비현실적인 상향 비교(자신보다 상황이 좋은 사람들과 비교하는 행위)가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휴밀리테인먼트는 입맛을 쫙 당기는 양념이다.
‘줄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이 무대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오랫동안 방송에서 노래와 작곡 실력을 입증했던 조현아가 라이브와 무대 매너 측면에서 매우 아마추어 같았다는 점이다. 흔들리는 음정이나 불안한 호흡, 어색한 시선 처리 같은 요소들이 베테랑 가수의 그것이라기에는 낯설어 보인다. 누군가는 연습 부족을 지적하고, 누군가는 안 하던 스타일이라서 신발이나 안무, 의상 등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본다. 둘 다 베테랑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실수고, 연차가 찬 가수가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라이브에서 망했던 역사는 숱하게 많다. 두 번째는 음악과 가사가 촌스럽고 이상하다는 것. 음악과 가사는 어느 정도 취향의 영역이기도 하다. 같은 프로듀서에 비슷한 결로 언급되는 헤이즈의 ‘빙글빙글’이나 지수의 ‘꽃’ 역시 난해하다는 반응과 ‘중독성 있다’는 반응이 엇갈렸고 챌린지가 인기를 끄는 등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세 번째, 기획 자체가 조현아와 안 어울린다는 의견은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가 이상하다’, ‘자기객관화가 안 됐다’는 반응으로도 갈음할 수 있다. 화려하고 색감 있는 의상을 예쁘지 않다고 지적하거나, 무대에 함께 선 댄서들의 옷차림이 지나치게 소박해서 더 튄다는 지적도 높은 추천 수를 얻는다. 즉 미감이 거슬린다는 뜻이다. 조현아는 1인 기획사라서 이 헤메코가 다 본인 취향이라는 주장은 그를 기획의 피해자로 동정할 가능성마저 봉쇄한다. 이것이야말로 ‘줄게’ 무대가 가장 큰 조롱을 받는 이유이다(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긴 한데, 후술한다). ‘줄게’를 둘러싼 조롱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는 악령… “‘자기 객관화’가 안 된 여자가, ‘어울리지 않는 옷과 메이크업을 하고’, 종국에는 ‘추구미’를 구현하는 데 실패한 것을 들켜서 우스꽝스러워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공포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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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관심 경제에서는, 휴밀리테인먼트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비의 깡 신드롬은 ‘1일 1깡’, 팬이 작성한 ‘비에게 바라는 시무 20조’ 등이 화제가 되면서 어느 순간 긍정적인 놀이로 전환되었으니까. 비는 이를 계기로 뜸했던 방송에 다시 등장하고, 과자 광고까지 찍었다. 하지만 모두가 비처럼 망신당하는 상황을 전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여성 연예인에게는 더 가혹한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연예인에 대한 환호와 ‘쌤통 심리’가 젠더화되어 있음을 지적한 김현경은 이처럼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명명했다. 조현아는 데이팅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남아선호사상 발언을 했다가 반발을 산 적 있다. 논란이 되자 그 자신이 차별당하며 살았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경하게 맞대응했다. 이로 인해 이미지가 나빠졌고, ‘줄게’ 무대에는 ‘남자만 밥 더 많이 주는 식당 사장님 같아요’라거나 ‘남미새’라는 댓글이 많은 좋아요를 얻었다. 조현아의 발언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가수를 조롱하는 것은 성차별에 대한 관심이나 문제의식과는 무관한 구실이다. 도덕적 흠결은 조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당하기도 한다. ‘쌤통이다’라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이 덜어지고 나쁜 사람을 심판한다는 효능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조롱에는 자신이 비친다. 여성 연예인이 망신당하는 것을 볼 때의 재미는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왜 누군가는, 혹은 ‘나’는 어떤 여성의 욕망이 가시화되었을 때 공감성 수치를 느끼는 것일까. 어떤 행동은, 정말 그만큼 조롱당할 만한 것일까.
가사 전문: https://naver.me/FeXUx127
경향신문 이진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