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재위 13년
업적: 불교에 대해 규제 완화(석보상절 등) 법전 경국대전 집필(반포된 성종 전에 세조가 다 만듬), 규장각 설치, 금속활자로 도서관 제작과 책 편찬, 한국사 첫 인구조사 성공, 한자음 한글로 정의(feat.신숙주) 왕권강화, 군사 훈련으로 군사 강화, 의외로 백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따뜻했는데 조선 최초의 한글사전 초학자회 제작하면서 백성들의 원활한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한자로 된 농서들을 전부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게 한 뒤 한글보급사업을 실행함(최고업적1), 덕분에 양민들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됨 실제로 한글은 세종 대에 완성되었지만 아들인 세조 대에 제대로 활성화가 되면서 보급, 과거시험 문과에도 처음으로 훈민정음, 즉 한글이 정식으로 도입된 뒤 반영되며 과거시험에 한글로 급제하게 하는 큰 성과를 올림, 지금까지 한글학 교수들 사이에서 세조는 가장 뛰어난 위인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음
성균관 강화, 지방 행정 체제인 면리제 시행(최고업적2), 면리제는 21세기 지금까지 써먹고 있음, 외교적으로는 왜나라와의 계해약조와 여진족과의 외교성공 등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북부대공임, 인성싸패인데 자기 아내인 정희왕후를 지극히 사랑했고 딸, 아들이랑 며느리한테도 극진하게 잘해줌
말 그대로 자기 가족한테는 엄청 잘했음 한국사에서도 애처가 왕으로 유명함 오죽하면 와이프 자랑 신하들 앞에서 하고 사냥할 때 정희왕후도 같이 말을 타야 갔음
대신 계유정난으로 단종 안평대군 금성대군 혜빈양씨 싹 다 죽이고 사육신 등 싸패짓을 함
영조- 재위 52년
업적: 압슬형 등 잔인한 형벌 폐지, 돈 함부로 쓰지 말라고 가체 금지령, 탕평책,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내려준 균역법, 매우 평탄했던 주변국들과의 외교, 비천한 출신의 모친 숙빈 최씨의 아들이라는 디버프로 개까였지만 철저한 신하들과의 정치싸움에서 승리, 나이 다 든 노년의 말년이 될 때까지 경연에 참여하며 꼰대 신하들이랑 대화하고 신하들 아닥시킴, 노론이란 소론 사이에서 노론 편 들어줬지만 은근히 위협도 해서 노론 조용하게 만듬 박문수 및 신하들과 함께 재정 관련 서적 편찬, 그 외에 민간과 백성들에게 신경을 많이 쓴 왕이기도 함
청나라와의 교역으로 인해 안경, 고구마, 참마, 감자 등이 조선에 정식으로 수입됨, 의궤 편찬, 잦은 잠행, 암행어사들을 파견해 민간 백성들을 살피는 데 힘씀
그러나 최악의 아버지, 자식 차별, 딸 아들 관계없이 차별하고 화협옹주, 사도는 늘 갈구고 외면하고 냉대하며 괴롭힘, 그리고 아들 뒤주에 가둬서 살해
정비인 정성왕후한테는 제대로 대접도 안해준 최악의 남편이었으며(정성왕후 죽기 전까지 그나마 사도가 정신적으로 나았음) 정성왕후 죽었을 때 사위 죽었다고 신하들이 말리는데 남편 잃은 딸이 더 불쌍하다고 화완옹주한테 감, 미친 아들을 죽여달라 직접 말한 영빈 이씨는 사실상 아들인 사도세자가 죽고 삼년상 바로 다음 날 자살으로 생을 마감함 숙의문씨는 자기 며느리인 현빈이 죽었을 때 승은으로 들인 후궁인데 사도를 이간질하고 혜경궁, 영빈이씨한테 개기는 거 보고도 총애로 냅둠 숙의문씨, 화완옹주가 기승부리는데 그냥 놔둠
손자들? 정조제외 인조급으로 자비없었음 사도의 서자인 왕자 셋은 영조가 싹 귀양보냄, 그 중 박빙애의 아들인 은전군은 결국 정조대에 사약 받고 죽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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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왕 모두 공통적으로 민간 백성에게 관대하고 업적도 꽤 있었지만 개쓰레기에 파탄난 인성을 가지고 있었음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면 싸패 인성파탄인데 가족과 백성에게는 반대임 세조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남자, 영조는 가족들한테 쓰레기였음
업적만 보면 개인적 능력은 둘 중 누가 더 유능했을까? (왕으로서)
재위 대비 업적을 보면 무묭이는 세조가 더 유능한 거 같음 썩어도 준치라고 세종대왕 아들이라서......
영조는 군사적인 측면에선 나라가 평탄해서 딱히 한건 없었고 이쪽도 으름장만 놨지 자기편인 노론을 압도적으로 밀어주며 며느리네인 홍씨네가 해먹는 거 그냥 놔뒀음..... 그리고 그건 손자인 정조가 자기 외가를 본인이 전부 숙청해야 하는 숙제로 다시 돌아오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