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경주마에 대한 시선이 조금 우리랑 다른데 그 시작엔 이 하이세이코가 있었어 오구리캡이 나와서 판도를 바꾸게 한 기반을 만들어 준 게 이 하이세이코임
하이세이코는 오구리캡과 마찬가지로 지방마출신임.
중앙과 지방은 수준의 차이가 있다고 예전부터 말해졌고 지금도 중앙에서 잘 못 달리면 일단 지방 가서 승점 올려서 상경하거나 지방에서 잘 나가는 말이 되거나...
하이세이코는 태어났을 때부터 덩치가 크고 다리가 튼튼하여 목장의 망아지들과 달릴 때 항상 선두에 섰었다. 당시 목장장인 타케다 타카오는 주변에 '더비를 이길 수 있을진 모르지만 출주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말'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
이후 하이세이코는 어미말 하이유의 마주인 아오노보를 통해서 오이 경마장 소속으로 옮겨왔는데 이때 이미 다른 망아지들과는 수준이 다른 몸집이 만들어져서 중앙경마의 조교사들에게 이적을 제안받기도 함
이후 지방연승 중앙 이적이 결정됨
이때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중앙에서도 기대에 부응하여 야요이상과 스프링 스테이크스를 연속해서 제패하고,결국 사츠키상까지 이기자 하이세이코의 활약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에는 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상경민들이 지방에서 올라온 말이 중앙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처지를 투영하여 응원하게 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어지는 NHK배에선 하이세이코를 보기 위해 17만명의 관객들이 모였고, 여기서도 우승하며 중앙 이적 후 4연승을 기록한다.
하이세이코의 연승 행진은 일본 더비에서 3착하며 멈추게 되었으나 인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언론에서 하이세이코를 敗(하이)세이코라고 비난하자 이에 대한 반발심리가 생겼고, 하이세이코를 동정하는 여론이 생겼기 때문이다..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온 사람들에게 하이세이코는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로 보였던 것이 컸다고...
나이가 들면서 예전만큼 성적이 안 나오자 연말대경기인 아리마에서 은퇴하기로 결정
하이세이코가 달린 오오이경마장
은퇴 경기인 아리마 기념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1번 인기로 출전했고, 우승은 타니노 치카라에게 내줬지만 마지막까지 타케 호프와 경합하면서 2착을 거둬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게다가 중계 카메라 마저 우승한 타니노 치카라가 아닌 하이세이코를 비춰줬다고...
우승마 울어요ㅠㅠ
https://youtu.be/TNzZcCTc9Hc?si=RgwRl88dsyFOBG_F
은퇴후 나온 노래
아리마 기념이 끝난 후 TV에선 기수가 부른 さらばハイセイコー(안녕히 하이세이코)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큰 화제가 되어 앨범이 50만장 이상 팔렸으며 오리콘 차트 4위까지 기록함
종마로는 뛰어난 성적을 냈는데 19마리의 중상마와 더비마가 나왔음
1984년엔 현창마(명예의 전당) 원년멤버로 선정되었는데, 비록 성적은 다른 현창마들에 비해 떨어질지라도 경마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것이 인정된 거라고...
1997년엔 종마도 은퇴했고, 2000년에 30살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후 '안녕히 하이세이코'가 추모판 CD로 재발매되었으며, 나카야마 경마장과 오오이 경마장에는 하이세이코의 동상이 건립됨
2001년부터 하이세이코가 오이에서 마지막으로 이겼던 세이운상이 하이세이코 기념으로 개명됨
하이세이코가 길을 내기 시작해서 오구리캡이 일본경마에 대한 사람들의.시선을 완전히 바꿔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