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고려대 학생들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코레일 파업, 경제 민주화, 국정원 선거 개입 등 부조리한 사회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자보는 전국을 강타했다. “안녕들하십니까”는 각종 모임의 인사말이 됐고, 대중들은 ”안녕하지못합니다“로 답했다. 결코 안녕하지 못했던 사회에 대한 풍자, “안녕하십니까”였다.
2024년 6월. 김희선(노영원 역)이 ”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물었다.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안녕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역설적 질문이다. (아이러니하게, 그 물음은 자신에게 돌아왔다.)
“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노영원은 완벽한 가정을 이룬 여자다. 그는 한국 최고의 가정심리상담의. 남편은 재건성형 전문의다. 아들은 훈남 모범생. 시아버지는 검찰총장 출신. 시어머니는 추리소설 작가다.
이 (겉으로 보기에) 평온한 가정은, 어느날 하루 아침에 무너진다. 갑자기 등장한 ‘악녀’ 이세나(연우 분)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집안이 안녕하지 못해서다. 건강하지 못해서 였다.
MBC-TV '우리, 집'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집'(My home)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지만 ’쉼표‘ 하나로, 동물을 사육하는 '우리'(Cage)의 집이 된다. 중의적이다.
‘우리, 집'의 전개 구조 역시 제목 만큼 이중적이다. 우선, 이세나는 여지없이 마녀다. 어느날 갑자기 노영원의 가정에 접근해 가족을 파괴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나는 일종의 트리거에 불과하다.
이세나가 최재진(김남희 분)을 가스라이팅할 수 있었던 건, 재진이 안녕하지 못한 탓이었다. 나약하고, 병들어 있었다. 그런 재진을 곪게 만든 사람은, 엄마 홍사강(이혜영 분)과 아내 노영원.
홍사강은 아들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그의 인생을 대리설계했다. 노영원도 그랬다. 아들 도현(재찬 분)의 학습플랜을 빡빡하게 짜주는 건, 아들의 꿈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부응)를 위해서였다.
’우리, 집‘은 보여주기의 허상을 꼬집고 있다. 보이는 것을 위해 보여주지 말 것. (우리에서) 한 발 물러설 때, 진짜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 갇힌 가족을 통해 말하고 있다.
각자의 삶에 대한 인정이 진정한 행복의 출발점 아닐까. ‘우리,집’은 드라마 최종회 엔딩에서 노영원의 목소리로 비뚤어진 가족애를 바로 잡았다.
“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문제는 안녕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안녕의 기준을 행복, 화목, 완벽이란 단어 안에 가둬왔던 건 아닐까.
이제야 알 것 같다. 망가진 가족은 없으며, 잘못된 기대가 있을 뿐이란 걸.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 잘못된 기대에서 벗어나 타인이 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난 믿는다. 가족이 해체됐다고 사랑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누군가 내게 우리 가족의 안녕을 묻는다면 이제 좀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을 거란 걸." (노영원 나래이션)
그래서 괜찮다. 미끄러지는 것도.
PS. 악의를 가진 마녀보다, 선의로 무장한 가족이 때로는 더 해롭다. 악녀로 인해 가족이 해체됐다? 사실 악녀 덕분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사이코패스 추적기가 아니다. 우리(we)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가족을 우리(cage)에 가두면 행복할까? I don't see you. 볼 수 없다.
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433/0000105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