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를 두고 사신이 말하기를,
“복스러운 기품이 전하와 같다. 우리 조정에서 만약 세자의 장대함이 이와 같은 줄을 알면 어찌 세자에 봉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다. <세종실록> 5년 4월 6일 기사 중에서
● 사신이 세자 대우하기를 매우 공손히 하고 칭찬하여 말하되,
“이 나라는 산수가 빼어나다더니 이런 아름다운 인물이 나는군요.”
하였다. <세종실록> 7년 윤7월 19일 기사 중에서
● 문종의 얼굴이 아름답고 수염이 매우 길어, 웅위(雄偉)한 모습이 범상하지 않았다. <연려실기술 제5권 문종조 고사본말 문종편>
4. 문종의 어진
임금의 얼굴을 그린 어진은 임진왜란 등으로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문종이 관우를 닮았다고 하는 호남형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어진에 관한 일화가 <연려실기술>에 전해져 오고 있어 문종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의 일이다. 신익성(申翊聖)이란 자가 임금의 모습이 그려진 족자 하나를 얻었는데, 조정에서는 모두 인종의 어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익성은 그 용안의 수염이 길게 그려졌다는 말을 듣고 혼자 문종의 어진이라고 주장했다.
후에 표구할 때 묵은 배접을 벗겨 내고 보니, 그 뒷면에 문종의 어진이란 글자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에 수염이 매우 인상적이고 잘생긴 얼굴로써 문종의 어진이라고 추증했던 신익성의 탁견은 실로 놀랄 만하다.
http://www.newskr.kr/news/articleView.html?idxno=37149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여 명나라까지 소문이 자자했고
체구도 건장하고 수염이 아름다워 당시 최고의 극찬인
'관우'를 연상케 하는 남성미의 정수였다는 문종
안타깝게도 임진왜란때 어진이 소실되어
실제 외모를 알 길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