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우석은 이토록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고, 깨어나고 싶지 않다. 아니, 이 꿈에서 깨더라도 여전히 꿈을 꿀 것이다.
요즘 기분이 어때요? 전설적인 인터뷰어 카라 스위셔처럼 첫 번째 질문은 무조건 어렵게,라는 규칙을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인터뷰이에게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던지는 첫 번째 물음으로서는 다소 싱겁다는 것을 인정한다. 변우석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로 방영 두어 달 만에 일약 스타로 급부상했다.
배우가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마치 아이돌의 그것 같은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는 건 결코 흔치 않은 현상이다. 한참 과거로, 그것도 TV와 영화관이 지금보다 훨씬 더 공고한 권력을 가졌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망스>의 김재원, <왕의 남자>의 이준기, <가을동화>의 원빈,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 정도랄까? 그러므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로서 이토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건 어떤 기분인지 말이다.
“분명 꿈은 아닌데 꿈을 꾸는 기분이에요. 너무 많은 분들이 저라는 사람을 알아봐주시고 깊이 봐주시는 것, 그 이상으로 좋아해주시는 것. 인생에서 이런 순간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는 깊게 본다,는 표현을 썼다. 맞다. 수년간 묵묵히 활동해오던 한 배우가 발견되었고 대중은 눈을 비비고 그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기쁘고 행복하고 한편으론 혹시나 실망하시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에요. 조금 이상하죠?”
실제로 요즘 변우석에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 ‘합성 같은’ 상황들. “얼마 전에는 뉴욕 타임스퀘어에 제 광고가 올라가기도 했어요. 팬미팅 티케팅은 저조차 실패했죠. 대기자가 5만 명인 줄 알았는데 50만 명인 걸 보고 제 눈을 의심했어요. 이클립스는 음원 차트 4위까지 올랐고요. 1위가 에스파 2, 3위가 뉴진스인데 그 밑에 제가 부른 노래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돼요.(웃음)”
“지금이 너무 좋지만 얼떨떨하기도 하고 피부로 와닿지가 않거든요. 살면서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돌이켜보면 참 좋았는데 정작 그 당시에는 제대로 즐기지 못한 시간들. 지금이 그럴까봐, 제가 지금의 소중함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일까봐 두려워요. 그래서 빨리 깨닫고 싶어요.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말하자면 변우석은 이토록 달콤한 꿈에서 깨고 싶지 않고, 또 깨어나고 싶다. <선재 업고 튀어> 마지막회 대본을 받아 보고 그는 울었다. 헤어지기 싫어서.
“16화에 아름다운 장면이 정말 많았죠. 솔이와 선재는 분명 행복한데, 그런데도 저는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대본을 보고 비로소 끝,이라는 게 실감이 났던 것 같아요. 제가 선재를 너무 좋아했나 봐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작가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비슷한 감정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선재를, 이 드라마를 보내기 싫어서 그런 감정이 드는 거라고요. 저도 앞으로 다른 작품을 하겠죠. 하지만 선재를 떠나 보내진 않을 것 같아요. 선재가 그리울 땐 언제든 드라마를 다시 꺼내 돌려 볼 거예요. 그렇게 잊지 않고 영원히 제 곁에 친구로 두고 싶어요.”
문득 궁금해졌다. 꽉 닫힌 해피 엔딩으로 끝난 드라마 속 임솔과 류선재는 지금쯤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이제는 그의 친구가 된 변우석이 대신 대답해줬다. “여전할 것 같아요. 솔은 ‘아, 좀 가리고 나와’ 하면서 가벼운 핀잔을 주고 선재는 ‘뭐 어때. 다 가렸는데’ 하면서 능청 떨고요. 가끔은 싸우기도 하겠죠. 그런데 싸움의 이유도 결국은 서로를 배려하거나 걱정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잠깐의 상상이지만 그의 만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최애와의 로맨스’도 좋지만 사실 나는 시청자로서 이 드라마의 미덕을 다른 데서 발견했다. 일상의 애틋함이랄까. 극 중 선재의 연인이자 시간여행자 임솔은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오면 언제나 자신의 일상에 감격한다. 어제까진 당연했던 같은 반 친구들, 담임 선생님, 어쩌면 지긋지긋했을 직장, 자가용. 아니, 가족이라는 존재, 멀쩡한 두 다리 모두 그에겐 선물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진 건 그가 다른 삶을 살아본 시간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변우석에게도 그랬다. 선재라는 삶을 여행하다가 현실에 돌아온 그 역시 일상의 힘을 느낀다. “그전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쉬는 날은 운동하고, 피자를 시켜 먹을 땐 핫소스를 듬뿍 뿌리는 거죠. 무엇보다 마음가짐요. 조금 나태해지려고 할 때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상기하는 거예요.”
그럴 만하다. 변우석은 2010년 모델로 데뷔한 뒤 2016년 <디어 마이 프렌즈>로 본격 연기자의 길로 뛰어들었다. 햇수로 9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오디션도 계속 떨어지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웃음)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도 했죠. 힘들었거든요. 어느 분야든 10년은 해봐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딱 10년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아니면 그땐 미련 없이 떠나자고. 그런 마음으로 계속 버텼어요.”
그러므로 변우석은 배우에게 필요한 자질이 끈기라고 믿는 쪽이다. “가만히 있지 않는 끈기. 그러니까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내는 끈기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만큼 상처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렇게 하나하나 채워가는 끈기요. 감히 누군가에게 배우의 자질에 대해 조언할 순 없지만 저의 삶을 돌아보며 깨달은 건 그거였어요.” 변우석의 끈기는 잘하고 싶은 마음의 동의어다. “이 세상엔 잘하는 사람도, 잘생기고 돈 많은 사람도 너무 많잖아요. 그런 걸 따라가기보다는 그저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야망이라든지 일에 대한 욕심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저 나아지고 싶고,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른바 자신의 ‘공부방’에서 끝난 작품을 연구하듯 다시 복기한다. 아무리 성공했다 한들 이번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제 루틴인데, 저는 전작에서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을 꼭 다시 짚어보거든요.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그렇게 거쳐왔고요. 이번 드라마에선 감정의 농도를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주 깊은 감정을 연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에는 그만큼 담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죠. 발성이나 딕션에서 미흡했던 것도 분명히 있고요. 처음 맡은 드라마 주인공이다 보니 컨디션 조절도 잘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했고요. 다음엔 이런 점들을 고쳐나가야겠죠.” 보완할 점을 줄줄 읊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마치 지금의 갈채에 동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처럼 보였달까.
배우로선 계속 나아가고 싶지만 인간으로선 여전히 한결같고 싶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자. 이건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제 신념이에요. 그런데 저의 그런 태도와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크게 상처를 입었죠.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틀린 건가, 자괴감도 느꼈고요. ‘나는 그게 너의 장점이라고 생각해. 꾸준히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거야’ 그때 주변에서 해준 위로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여전히 촬영장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는 이유다.
<선재 업고 튀어>는 로맨스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팬일 수 있는 가능성, 그 무조건적인 지지를 예찬하는 작품일 것이다. “나는 너의 팬이야”. 비단 스타와 팬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연인이나 친구, 가족 혹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이 응원의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내포하고 있는지 감히 예상하기도 힘들다. 때로 삶은 그런 것들로 지탱되는 법이므로. 변우석도 그랬다. “저는 줄곧 제 자신을 지지해왔어요. 오디션이 끝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엉엉 울 만큼 속상했던 적이 많아요. 그럴 땐 이렇게 되뇌었죠. 할 수 있어, 우석아. 그렇게 많은 모델들 사이에서도 일해봤잖아. 언젠간 기회가 올 거야. 넌 사람으로서 괜찮은 아이잖아. 그러니까 너 자신을 믿어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저는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제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부심도 느껴요. 제가 열심히 살긴 살았나 봐요.”
변우석은 앞으로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 생각에, 이유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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