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열린 세르히와 타니아의 결혼식을 위협하듯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하객들과 인사하고자 긴 흰색 계단을 내려오는 이 커플에겐 더 큰 문제가 있다. 군데군데 빈 의자에서 알 수 있듯, 전체 하객의 절반이 참석하지 않았다.
불참한 가족과 친구들은 미안하다면서도 참석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징병관들에게 붙잡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25~60세 모든 남성은 군 소집을 위해 자세한 신상 정보를 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징병관들은 길거리를 다니며 등록을 피하는 이들을 쫓고 있다. 이에 숨어 다니는 남성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남부 오데사의 흑해를 바라보며 새 신부 타니아(24)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왜 나가서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해한다고 중얼거리듯 조용히 말했다.
타니아의 아버지 또한 지난해 10월 전사했다. 그리고 이제 타니아는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두 번씩이나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새롭게 남편이 된 세르히마저 징집되진 않을지 두렵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이 넘어가는 지금, 주변에 전사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긴 힘들다. 세르히와 타니아 부부의 15년 지기 친구이자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 막심은 수십 명에 달하는 자신의 친구와 지인도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엔 경찰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데, 왜 그들이 아닌 내가 나가서 싸워야 하냐?”고 물었다.
징병을 피하려는 이들은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식당, 마트, 주말에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공원도 마찬가지다. 막심은 “마치 감옥에 갇힌”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실시된 징병 제도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부엔 분열이 생기고 있다. 복무 중인 남성들과 징집을 피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최전방에 가 있는 여성들과 집에 숨겨주고 있는 여성들 간에도 불편한 분열이 생겼다.
시민들의 대화에선 징집이 거의 빠지지 않으며, 종종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달엔 누군가 징병관의 집에 폭발물을 던지는 사건도 있었다.
오데사 외곽의 어느 아파트 문 앞에 서자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함께 보바가 나타났다. 그는 7살 난 어린 딸을 마치 방패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딸과 함께 있으면 징병관들이 자신을 잡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딸 없이 절대 혼자 외출하지 않는다.
IT 공학자인 그는 지난해 출근길 버스에서 군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총을 겨누며 보바에게 버스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그를 입영 센터로 끌고 갔다. 그는 서류만 챙겨서 다시 오겠다고 설득해 간신히 벗어났고, 이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보바는 “나는 군인이 아니다. 무기도 잡아본 적 없으며, 난 최전선에서 유용한 존재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징집병 무리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40대 후반~50대로, 직업은 돼지 사육사, 창고 관리자, 건축업자 등이었다. 오합지졸 같아 보이는 이들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남은 전쟁 기간 숨어서 지내고 싶진 않다고 했다.
트램 관리자라는 올렉산드르는 숨기로 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내 선택을 했으니, 그들도 그들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4nny2n9l3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