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당연히 영어 하겠지?’가 오히려, 과도한 영어 중심주의는 아닐까?
https://youtu.be/Im6xQyglYuU?si=3v4-WCcg4d0QPR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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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많은 이들이 '지독한 백인 남성 기자의 인종차별적 언행'이라 까대는 이 영상 클립은 2018년 상하이 그랑프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1. AMD CEO인 리사 수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 이는 마틴 존 브런들, 영국 Sky Sports의 해설자이자, 전직 포뮬러 1 레이서, 투어링 카 레이서, 살룬 카 레이서, 그리고 1990년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그룹 C 챔피언.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듣보잡 TV 리포터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모터스포츠 분야에 있어 마틴 브런들은 전설적인 인물 중에 한 명이다.
2. 저 인터뷰는 사전에 조율된 게 아니라 포뮬러 1의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패독에서 마틴 브런들이 랜덤하게 아무나 붙잡고 인터뷰를 시전하는 Sky Sports의 이벤트 중 하나다. 코너 명은 "Marty's gridwalk." 코너의 특징은 마틴 브런들이 마이크를 들고 패독과 그리드를 오가며 정말 랜덤하게 진행을 한다. 레이서, 감독, 패독에 대기하고 있는 미캐닉들, 관람객들, 캐터링 업자들, 동료 기자들, 레이싱 퀸(우리나라에선 레이싱 걸이라고 하지요) 등등, 인터뷰에 등장하는 이들의 인종, 성별, 직업 또한 랜덤하다.
3. 실버스톤(영국)과 마이애미(미국)를 제하면 포뮬러 1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국가들 중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공용어인 나라는 거의 없다. 바쿠(아제르바이잔)이나 샤키르(바레인), 코트 다쥐르(모나코) 같은 데선 진짜 영어가 무쓸모에 가까울 정도다. 저 인터뷰가 이루어진 상하이 그랑프리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사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많은 매체들이 레이싱 드라이버나 팀의 감독들을 제외하면 디폴트로 깔고 가는 첫 질문이 "혹시 영어 할 줄 아세요?"다. 건방진 영길리라서 인종차별 의도를 갖고 그런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애당초 마틴 브런들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쪼잔한 인물이 아니다.
4. 마틴 브런들은 자신이 인터뷰한 이(그러니까 리사 수)를 못 알아봤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그런데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많은 분들이 "아니 기자라면서 어떻게 리사 수를 모를 수 있냐?!"라 하시는데 반대로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당신이 잘 알거나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거나 전세계의 셀럽들의 얼굴과 용모, 배경, 직함, 경력을 모두 꿰차고 다니시냐고.
5. 이 영상 클립을 "와 ㅆㅂ 영길리 새끼가 선 씨게 넘네?!" 하면서 인종차별적인 영상으로 브랜딩한 건 컴덕들이다. 응 컴덕들에게 리사 수는 영웅 그 자체니까. 하지만 동시에 포뮬러 1 팬들 대부분에게 있어 리사 수는 듣보잡이다. 컴덕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다. AMD는 반도체와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는 엔비디아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자 빅 네임이지만, 모터스포츠 분야에 있어서는 그저 Scuderia Ferrari의 39개 스폰서 기업 중 하나였을 뿐이다. 어떻게 리사 수를 모를 수 있냐고? 모를 수 있어. 그리고 사실 그건 전혀 이상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님. 자기 관심분야나 전문분야가 아니면 모를 수 있어. 게다가 저 인터뷰는 사전 조율된 게 아니라 정말 '우연히 만난 사람 붙잡고 하는' 돌발성 인터뷰야. 물론 대회에 입장한 VIP를 사전에 미리 다 조사를 해놨다면 저런 사단이 나진 않았겠지만, 그런 시간적 여유는 없었을 거고 게다가 보안 상의 이유로 VIP리스트를 공개할 FIA도 아니고.
6. 이 영상에는 몇 가지 뒷 이야기가 있다. 이 인터뷰가 전세계 컴덕들의 공분을 사고, 마틴 브런들의 트위터에 컴덕들이 몰려가 댓글 테러에 가까운 행보를 저지른 것도 그 중 하나고, 포뮬러 1 팬들이 반대로 AMD 불매운동을 하거나 AMD 공식 트위터에 불을 놓는 짓거리도 시전하고 그랬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둘 다 도찐개찐이라고 생각하지만.
7. 그런데 마틴 브런들이 리사 수에게 그를 몰라 본 것에 대한 걸 정중히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다들 잘 안 하시더라. 리사 수도 그의 사과를 받아드리며 '다음에 컴퓨터 맞추실 땐 최신 AMD 칩 하나 드릴께요~'라고 답하며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다만 마틴 브런들도, 리사 수도 한동안 이 인터뷰 영상에 대해 온갖 매체에서 "해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마틴 브런들은 "왜 인종차별을 했느냐" "어떻게 리사 수를 몰라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리사 수 또한 이후 수 많은 매체들에서 "일개 영길리 기자 나부랭이에게 인종차별을 받은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현재 저 둘은 친한 친구 관계다) 뭐, 그렇다구
https://youtu.be/bmrqPJigiVc?si=7djAjwFs-JIS3tV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