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잠실야구장, LG 트윈스는 롯데 자이언츠와 연장전까지 이어지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8회와 9회 5점을 뽑고 8-8 동점까지 오면서 야수 교체 카드를 대부분 소진했다.
허도환은 연장 10회 무사 2루에서 1사 3루를 만드는 임무를 안고 타석에 들어섰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 몸쪽 깊은 공이 손가락을 강타하면서 자칫 큰 부상을 염려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동안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던 허도환은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손을 덜덜 떨면서 1루로 향했다. 그러나 이 순간 LG는 누군가를 대신 내보낼 처지가 아니었다. 포수로 박동원이 선발 출전했지만 7회말이 끝나고 3-8로 점수 차가 벌어지자 김범석이 대신 마스크를 썼다. 허도환은 LG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포수였다.
나머지 벤치 멤버도 다 썼다. 안익훈이 대타로, 김대원과 김주성이 대주자로 출전하면서 허도환 대신 뛸 주자도 없었다. 염경엽 감독이 퇴장당한 가운데 LG 벤치는 투수에게 대주자를 맡기는 마지막 카드까지는 쓰지 않았다. 대신 허도환에게 주루까지만 맡길 생각이었다.
이때 LG 불펜에서는 누군가가 포수 수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김현수였다. 김현수는 프로 데뷔 후 1루수와 외야수로 뛴 적은 있지만 포수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야수가 전원 출전한 위기 상황에서 기꺼이 '긴급출동' 포수를 맡기로 했다. 유영찬이 몸을 풀고, 김현수가 공을 받으면서 간단한 사인을 전달받았다.
단지 공을 받아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라면 불펜포수가 충분히 할 수 있다. 김현수는 실제로 포수 수비를 준비했다. 경기 후 귀가하던 허도환은 "손가락은 조금 나아졌다. 내일까지도 안 좋으면 MRI를 찍어보기로 했다"며 "수비 못 나갔으면 (김)현수가 하려고 했다"고 활짝 웃는 얼굴로 얘기했다.
그러나 포수 김현수가 실제로 그라운드를 밟는 일은 없었다. LG는 문보경의 2루타와 허도환의 몸에 맞는 공에 이어 김주성까지 볼넷을 고르면서 무사 만루 기회를 얻었다. 박해민의 헛스윙 삼진 아웃 뒤 신민재가 좌익수 뒤쪽으로 날아가는 뜬공으로 희생플라이를 기록해 9-8로 경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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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고 바로 불펜으로가서 공받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