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프레데릭 로버츠가 짤리고, 대신 영국군 총사령관이 된 사람이 로버츠의 참모장 허버트 키치너였다. 키치너는 반격하는 과정에서 영국군들은 보어인 게릴라가 발붙일 곳을 없애기 위해 집결캠프[16]를 세워 12만명의 보어인을 강제 수용했는데[17], 강제수용소에서 27,927명의 보어인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고 이 중 22,074명은 16세 이하였다. 당시 남아프리카의 흑인들도 14,154명이 기아로 사망했는데 보어인들에게는 영국을 편든다는 이유로, 영국군에게는 보어인들을 편든다는 이유로 동네북, 혹은 고래싸움의 새우등 신세로 죽어나갔다. 사진 촬영 후 바로 사망한 보어인 소녀. 보기에 따라 끔찍하니 클릭시 주의할 것. 영국 본국에서조차 같은 기독교인 백인을 이렇게 죽이냐며 반발이 많았다
PS 이 캠프가 훗날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는 절멸수용소의 모델이 되었다고함
PS 2근데 이 당시에 크게 고통받은 보어인들도 50여년이 지난후 남아공의 정권을 잡자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을 상대로 악명높은 차별정책을 실시하는데
그 유명한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