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어요. 망했습니다. 복구하는 데 20~30년은 걸릴 겁니다."
카이스트에서 물리천문학을 전공한 후 기초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박찬(40) 연구원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올해 R&D(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4조 원 넘게 깎은 여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었다.
'정부가 내년엔 삭감된 예산을 원상복구 시켜주겠다고 한다'는 기자의 말에도 "기초과학의 한 세대가 이미 포기하거나 해외로 나가거나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중간 세대가 붕괴해 그다음 세대를 키울 사람이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박 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중력파를 관측해 중성자 배열이나 블랙홀의 내부 구조 등을 추론·검증하는 연구를 해왔다. 10여 년을 과학자로 일하는 동안 국내 밖으로 눈을 돌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올 7월께부터 중국 국책기관에서 일하기로 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R&D 카르텔' 발언과 R&D 예산 삭감의 여파가 그에게도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다니던 곳에서 돌연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받고 지난해 12월 계약이 종료됐다. 국내엔 일자리가 없어 해외 100여 곳에 이력서를 낸 끝에 중국행을 결정했다.
박 연구원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안 되니까 가기로 한 것"이라며 "(정부가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고, 어느 분야가 트렌드이고 대세인지 모르며, 키울 생각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초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며 "임금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다. 의지와 열정만 꺾지 말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계약 만료 통보... 7월부터 중국 국책기관서 일해"
- 최근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14.7% 삭감해 논란이 일었다. 중장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기초과학 분야에 한정해 말씀드리면 중장기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장 기초과학이 괴멸된다. 멸종된다."
- 왜 그런가?
"기초과학의 한 세대가 그냥 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현 상황으로 설명드리자면, 예산삭감으로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금 제 나이 때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이 분야를 포기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로 나가는 거다. 두 경우 모두 국내에는 기초과학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이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몇 년 후 예산을 늘리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지금 기초과학 분야를 떠나면 당장 다음 후배를 키울 사람들이 없게 된다. 몇 년 공백이 20~30년의 격차를 만들어낸다. 중장기가 아닌 당장 기초과학 분야 한 세대가 사라지게 되는 거다."
"돈 되는 분야만 지원하겠다는 식... 기초과학 안중에 없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24275?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