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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의료체계가 조금 늦게 망하는 법에 대한 정재훈 교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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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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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인기 없는 정책을 이야기할 용기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만 선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지금 지지하는 정책은 후속 세대나 국가의 미래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요? 


 1.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유사성 

 어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국민 공론화 위원회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높이고 소득대체율 또한 늘리는 소득보장안을 선호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험료율만 올리고 대체율을 그대로 두는 재정안정안은 오히려 선호가 감소했습니다. 소득 보장안은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재정 안정안보다 2093년까지의 누적적자가 2,670조 원 적어 미래세대의 부담이 훨씬 덜한 방안입니다. 하지만 시민 대표단의 선택은 더 높은 보장성이었습니다. 지금 활발히 이야기되는 의료개혁도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접근성과 의료의 질을 가진 의료체계와 현재 세대에게 엄청난 기대 수익을 제시하는 국민연금은 모두 과거의 급격한 성장의 산물이자 현재의 우리의 수준의 반영입니다. 하지만 이 두 제도는 모두 밝은 우리나라의 미래에 기대는 부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망은 매우 어둡습니다. 


 2. 2055년의 미래 

 저는 건강보장과 관련된 연구에서 미래예측의 기준점을 2055년으로 제시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뒤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국민연금의 고갈시점이 2054년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운명의 날 우리의 미래세대는 어떤 부담을 가지게 될까요? 지난 2월 제시된 KDI의 국민연금 구조 개혁 방안에서는 소진 시점인 2055년 이후에는 35%의 보험료율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약속된 연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암울한 예측이 제시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국민건강보험도 비슷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총액 증가속도라면 10년뒤인 2035년에는 보험료율이 9%, 30년 뒤인 2055년에는 최소 15%에서 최대 20%의 보험료율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쉽게 말해 올해 출생한 아이들은 소득이 생기는 순간부터 소득의 35%를 국민연금, 15% 이상을 국민건강보험 유지에 지불해야 합니다. 너무나 잔인하고 미안한 결말입니다. 이런 예상은 인구학자들의 이야기처럼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향후 발생할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이때까지 누적된 우리 사회 문제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우리 사회는 당장의 의사 공급 불균형으로 인해 생기는 현재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그 해결책으로 의료공급을 위한 정원확대와 필수의료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미래세대의 급격한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3. 왜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공급자(의료계)와 소비자(국민), 관리자(정부)가 분리되어 있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 이러한 구조는 값싸고 질 좋은 의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정부는 적은 초기 투자와 낮은 운영비로 의료체계를 운영할 수 있었고, 의료계는 엄청난 노동강도와 낮은 수가에도 불구하고 높은 회전수를 보장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은 싸고 질 좋은 의료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국민의 의료 수요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부양비를 가진 인구 구조의 덕으로 충족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한때 축복이었던 인구구조는 재앙이 되고 있고 엄청난 의료 수요 증가는 필연입니다. 정부는 이제 재원 조달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의료계는 세대, 직역 간 갈등과 벌어진 격차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안타깝게도 현재의 불편을 미래 세대의 부담보다 더 중요시하고, 국민들의 의료 수요를 계속해서 감당하겠다는 인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의사 공급을 늘려 미래 의료 수요를 모두 감당하고, 의료계의 반대는 대규모 투자로 극복하겠다는 대책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왜 필수의료 현장에서 엄청난 노동강도를 감당하며 비필수의료 영역과 경제적 격차를 감수하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들에게 지지 받지 못하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4. 그나마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

 이제 우리 의료 정책은 국민들에게 최대한의 보장성을 제공하려는 방향에서 미래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인력자원을 투자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꼭 필요한 필수의료체계를 오랫동안 보장할 수 있는 흐름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무제한의 의료 수요를 공급과 재정으로 뒷받침하는 하지 않고, 수요를 줄여서 후속 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제 어렵지만 인기 없는 정책을 이야기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미래는 의료이용을 시작할 은퇴세대들에게 또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는 예전보다 경제적 부담이 더 늘어나고 병원에 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이고, 의료계에게는 앞으로의 시장 성장이 예전보다 크게 둔화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세대의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기도 어렵고 의대 증원이나 필수의료에 대한 대규모 예산 투자와 같은 쉬운 해결책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가지 않는다면 최근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최근 몇 번의 공개적 논의의 장에서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의 일부 정책보다는 다른 접근이 필요함을 주장해왔습니다. 의료 수요를 줄여서 공급의 필요성을 감소시키고, 재정 지출을 줄여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변화입니다. 


 5. 그래서 어떻게? 

 앞서 한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편한 이야기이겠지요. 하지만 그 정책적 대안은 간단하게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도 몇 주전 얼룩소의 천관율 에디터님께서 제 이야기를 담아 좋은 기사를 써주시고 책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pfbid03x3HaUovM8nzfdvb7YASqaR9gmkFQ3miv9NdM4vMHrzDzBX6ytNvRFSyugJ5xVuYl&id=100002014156359)


 (1) 우리 의료 시장은 사실상 세 단계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첫째, 가장 안쪽 영역은 국민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필수의료가 있습니다. 둘째, 중간 영역이 있습니다. 생명과 당장 상관이 없지만 불편하거나 힘든 질병, 관리하지 않으면 중증이 될지 모르는 만성질환을 다룹니다. 흔히 개원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과, 가정의학과 등이 다루는 영역입니다. 셋째, 가장 바깥에는 시장성은 높으면서 필수의료와는 거리가 먼 분야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용시장이 있습니다. 


 (2) 이 세 영역의 도식에서 정부와 국민, 의료계의 보건의료의 세 축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필수의료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수의료에서는 인력이 유출됩니다. 이 분야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100%에 가깝게 하더라도 국민의 과도한 의료이용이 발생하지 않고, 각 의료의 원가 이상으로 보상해야 의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정부는 필수의료 영역에 대한 수가조정과 보장율 인상만으로도 핵심 의료를 보존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보유하게 됩니다. 중간 영역에서는 과도한 수요를 줄여야 합니다. 또한 과도한 수요가 급격한 시장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적정하게 유지해서 국민들의 접근성을 줄여야 합니다. 실손 보험처럼 직접적으로 시장의 가격신호를 교란시키는 제도는 급히 정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수요와 공급 자체를 억제해야 재정을 필수의료에 집중하면서도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바깥 영역은 존재는 존중하되 의료 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늘리는 수단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의학성 전문성이나 객관적 근거가 없이 존재하는 영역은 의료 행위에서 제외하고, 미용, 성형외과등의 시장은 초과로 형성되는 이익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편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합니다. 현재도 미용 시장은 부가가치세 10%를 적용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적정 세율로 건강보험 재정으로 편입할 수 있다면 미용 시장이 형성되는데 건강보험, 면허제도가 기여한 바를 정당하게 회수할 수 있는 기전이 될 것입니다. 


 (3) 이런 변화는 의대 증원보다 더욱 즉각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증원은 이런 정책이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편입되고 추진되는 상황에서 더 유연하게 또 어쩌면 더 합리적으로 결정될 수 있습니다.


 6. 서글픈 현실과 믿음 

 아마 위와 같은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제가 처음이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정말 인기가 없습니다. 국민들에게는 2,000명 증원과 같은 속 시원한 정책이 아니라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며 부담을 늘리면서도 조금 더 늦게 망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시장 성장이 억제될 수 밖에 없으니 아마 증원보다도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정부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정책이라 선택이 불가능할 겁니다. 저는 그래도 우리 사회가 가진 성숙한 논의의 힘을 믿습니다. 모두가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더 도움이 되는지 꼭 같이 고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미 기성세대에 가까운 정책연구자이고, 기초의학 종사자이며, 의사여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의 아버지로 저의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hare/p/gzJZB6SNFkQqfs56/?mibextid=Nif5oz


긴 글이지만 읽어볼 만한 것 같아서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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